"죽음의 문턱에서 기증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이웃과 건강한 삶을 나누고 싶어서 힘들게 결심했던 것인데…."

권모(53)씨는 2003년 국립장기이식센터를 통해 서울의 한 병원에서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간(肝) 일부를 이식해 주었다. 가족들은 장기이식을 하겠다는 그를 만류했지만 말기 간 질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그의 결심을 꺾진 못했다. 간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올해 초, 권씨는 몸이 쉽게 피곤해지고 속에서 짠물이 올라오는 것 같은 증상을 느꼈다. 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8년 전 간이식을 했던 병원을 찾았다. 수술할 당시 기증을 받은 사람이 기증자의 사후 검사 등을 위해 검사비 등을 기탁했다고 들었던 그는 간에 대해서 검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측은 8년이나 지났으니 간이식 수술에 따른 사후검사를 무상으로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질병이나 사고로 기능이 손상된 장기를 대신하기 위해 타인에게서 받은 장기를 신체에 옮겨 넣는 장기이식수술. 특히 살아있는 사람이 장기를 이식해 주는 '생체이식'은 의학적으로 건강에 큰 부담이 없다고 하지만 기증자의 입장에선 큰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생체이식의 95%는 친족 간에 이뤄진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남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결심하는 '순수기증'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은 1년간 병원 검진 비용 정도다. 장기 등 이식에관한법률 시행규칙은 순수 기증자에 대해 '장기 이식이 이루어진 경우 이식 후 1년 동안 기증에 관한 정기검진 진료비를 지급하고, 근로자의 경우 입원기간을 유급휴가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술 후 1년이 지난 뒤 기증자는 후유증이 생기더라도 어떠한 보상이나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무상기증이 원칙이고 생존 시 기증하는 경우 후유증이 100% 없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권씨는 "애프터서비스(AS) 기간이 정해져 있는 전자제품 취급을 받은 느낌이었다"며 "누군가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지난달 '생체 부분 간이식 기증자의 경험'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정선주 진주보건대 교수는 "많은 순수 기증자가 우울감과 정신적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고 했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장기기증을 했지만 사후관리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제도의 미비와 취업·보험가입 등 의 차별로 신체손상이 아닌 정신적 고통을 더 호소한다는 것. 정 교수는 "신체 손상에 대한 사후검사뿐 아니라 정신과와 연계한 심리상담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단체를 통해 장기를 순수 기증을 했을 경우 오히려 장기간 사후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순수기증자의 신장이식을 하고 있는 '사랑의장기 기증운동본부'는 신장 기증 이후 평생 사후 검진을 해주고 있다. 또 후유증이 발생했을 경우 후유증에 따른 수술비도 지원하고 있다. 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2003년 신장을 순수기증한 엄해숙(59)씨는 이미 오래전에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도 정기적 검진을 받고 있고, 분기별로 건강상태를 확인해 준다"고 했다. 그는 "순수 기증 이후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기증자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장기기증 붐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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