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전시평론·기획자

지난 주 9·11 테러 10주기 추모행사는 그날의 아비규환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다. 또 올봄 일본에서 쓰나미가 휩쓸고 간 참혹한 광경 앞에 인간의 나약함은 더욱 대비된다.

예수의 시신을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조각상이나 예수의 주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성모, 막달라 마리아, 사도, 성인들을 그린 그림을 피에타(pieta)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작품들로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 위치한 미켈란젤로의 조각, 흔히 '통곡'으로 불리는 지오토가 그린 스크로베니 성당의 벽화,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15세기 프랑스 화가 앙궤랑 콰르통의 패널화 '아비뇽의 피에타'가 있다. 고딕시기부터 시작되어 르네상스시기에 절정을 이루던 피에타의 전통이 21세기에 부활했다.

먼저, 2011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을 대표하는 이용백의 사이보그 피에타는 창문을 통해 전시장 외부에서도 볼 수 있게 설치되었다. '피에타: 자기죽음'은 자아와 이상 사이의 간극에 주목하는 작가의 관심이 응축된 작품이다. 조각의 네거티브 형태인 거푸집을 성모의 얼굴로, 거푸집을 버리면 나오는 완성본을 예수의 얼굴로 만든 이 작품에는 종교적 이념을 넘어서는 자아의 상실에 따른 슬픔이 녹아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재해석한 또 다른 작가 얀 파브르(Jan Fabre)의 전시 '피에타'는 호흡을 멎게 할 정도로 관람자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벨기에 출신의 얀 파브르는 조형예술, 안무, 연극감독 등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이다. 베니스의 '산타 마리아 델라 미제리코르다'(자비의 성모) 대강당에 설치된 5개의 대리석 조각 중 4개는 뇌, 심장 등 장기를 크게 확대한 것으로부터 나무가 자라나는 형상이고 맨 마지막이 피에타상이다. 천상의 빛을 상징하는 금빛 기단에 놓인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관람자는 신발 위에 슬리퍼를 덧신어야 한다. 회색 펠트천의 슬리퍼는 겸허와 공경의 느낌을 관람자에게 부여한다.

이 조각상들 양옆으로 도열한 기둥 마다 초록빛 누에고치가 걸려있다.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표상하는 요소들 중에서 단연코 절정은 '연민어린 꿈; 피에타 V'〈사진〉이다. 축 처진 예수를 무릎으로 안은 마리아의 얼굴은 해골인데, 이는 신성모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아들이자 메시아인 예수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성모의 슬픔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의 시신 위로 나비들이 사뿐히 앉아있다.

사고와 자연재해에 의한 심한 충격, 인간의 잔인함과 난폭함에 의해 남겨진 상처. 역설적으로 예술은 이런 참혹함과의 대화를 통해서 존재하고 또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예수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피에타는 실은 새로운 탄생-시작을 알리는 레퀴엠이다. 피에타, 즉 '신이여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라는 동정과 자비는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21세기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