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벼슬 3관왕은 장관, 대학총장, 국회의원이다. 이 3개의 자리를 모두 앉아본 어느 관운(官運) 좋은 인물에게 "3개 중에서 어떤 자리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보았던 적이 있다. "국회의원이 가장 좋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해서 결재해야 하는 빡빡한 자리도 아니고, 장관이나 총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책임질 일도 적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국회의원은 '건달의 꽃'이다. 건달이 성공하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이래로 다른 벼슬들은 대부분 왕이나 정권이 위에서 아래로 임명해주는 자리였다. 임명직 벼슬은 예스맨의 자질이 출중해야만 잘 맞는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민초와 서민들이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려준 자리라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어느 벼슬과도 그 성격이 다르다. 밑바닥 정서를 대변하는 벼슬이 국회의원이다. 권력을 들이받는 야성이 있어야 한다. 해방 이후로 국회의원은 학력제한이 없어서 국졸(초등학교 졸업)도 할 수 있었고, 나이, 성별도 제한이 없고, 출신지역도 제한이 없는 가장 오픈된 자리였다. 예를 들면 주먹이 좋았던 김두한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건달을 나쁘게 생각하면 '놀고먹는 주먹쟁이'이지만 좋은 의미로 보면 협객(俠客)의 뜻도 내포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나오는 수십 편의 열전(列傳) 가운데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유협열전(遊俠列傳)'이다. 사마천 본인도 고생을 해본 사람이라 이 유협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유협(遊俠)은 바로 협객을 가리킨다. 돈 있고 권력 있다고 서민들에게 함부로 하는 놈들을 보면 자기 목숨을 걸고라도 한 방 갈겨버릴 줄 아는 협객을 민초들은 존중하고 따랐다.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국회의원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협객(유협)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은 건달의 야성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국회의원들은 너무 '순한 양(羊)'들이 많다. 명문대 출신에 고시패스하고 TV 화면발 잘 받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직업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래 가지고 무슨 재미가 있나. 초식동물들만 있고 육식동물이 없다. 필(筆)을 쥔 사람으로서 '건달열전'을 쓰고 싶지만 '삼 김씨'이후로 쓸 사람이 별로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