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개학 이후 한 반에 58명이 수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이 70년대인가요? 도대체 교육지원청이라는 곳에서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에 있는 모 초등학교에 애를 보내는 A모씨(40)는 화가 머리 끝까지 솟아 있었다.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의 모 초등학교 5학년 교실. 31일 현재 한 교실에서 47명의 학생이 수업을 하고 있다. 2학년은 58명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다 뒤늦게 9월부터 분반을 할 예정이다.

A씨는 올해초 덕이동에 새로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인근의 다른 신규 아파트도 비슷한 시기에 입주가 시작됐다. 두 아파트는 총 2700여세대에 이르는 대규모 단지이다. A씨는 부동산시장이 가라앉아 있어 입주할 사람이 적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 입주 초기여서 이것저것 불편한 점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아이가 다닐 초등학교 개교에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 입주를 서둘렀다. 부동산 경기는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해 A씨가 입주할 때는 이사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입주자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아직 아파트 절반 이상이 빈집 신세다.

"교육청, 융통성 없다" 비판

A씨는 아이를 2학년에 입학시켰다. 이 학교는 당초 학년당 4개반씩, 총 24개반으로 개교한 신설학교이다. 개교할 때 학생은 모두 50명이 채 안 됐다. 교장과 담임교사 5명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10명 내외로 1개반씩만 편성됐다. 이후 학생들은 꾸준히 전학을 와 2학기 개학후 며칠 지난 8월 30일에는 1학년 61명, 2학년 58명, 3학년 51명, 4학년 39명, 5학년 47명, 6학년 39명 등 총 3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 학교 교사 B모씨는 "계속 입주하는 세대에 맞춰 학생들이 수시로 전학을 오는 바람에 학교 분위기는 매일매일이 개학초처럼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고양교육지원청에 따르면 초등학교 한 반 학생이 39명을 넘으면 반을 나누게 돼있다. 이에 따라 학교 측은 지난 4월말 1학년, 6월말엔 2·3학년을 분반키로 하고 교육청에 교사 충원을 요청했다.

문제는 교육지원청의 융통성 없는 느림보 행정이었다. 교육청은 분반은 반드시 한 반에 39명이 넘어야만 할 수 있고 그 이후 교사충원을 신청케 하고 있다. 학생수를 미리 예상하고 교사 충원을 신청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교육청에 교사 충원요청을 하면 교사 배치까지 한달이 넘는 게 예사였다.

이 초등학교가 4월말에 요청한 교사는 5월중순에 발령났지만 6월말에 충원요청한 교사 2명은 두 달이 지난 9월 1일자로 발령이 났다. 교사가 배치될 때까지는 2학년의 경우 한 반에 58명이, 3학년은 51명이 수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5학년은 현재 한 반에 47명이지만 언제 분반이 가능할지도 몰라 60명 넘는 학생들이 한 교실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교실이 좁으니 학생들 책상은 선생님 교탁 옆으로까지 파고 들어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다.

A씨는 "하도 답답해 교육청에 전화해 교사충원을 빨리 해달라고 하면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기다리라는 소리만 되풀이한다"며 "이 학교 같은 신설학교는 학생이 지속적으로 급증하는 상황을 감안, 미리 예상해서 언제든지 교사를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평을 쏟아냈다. A씨는 "전국에 있는 모든 신규 아파트단지 인근 학교들이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며 "교육청은 책상에 앉아서 규정만 따지지 말고 한 교실에 60명 가까이 모아놓고 수업하는 선생님, 학생, 학부모의 입장을 생각해보라"고도 말했다.

보건실 차려놓고도 보건교사 없어

교육청의 교사 충원 관련 규정 때문에 학부모들이 속끓이는 일은 더 있다. 교육청 규정에 따르면 교감과 교과전담교사는 6학급이 넘어야 배정된다. 또한 보건선생은 18학급이 넘어야 한다.

24학급으로 건립된 이 학교는 학기초에는 교감과 교과전담교사도 없었다. 학기중에 교감과 교과전담교사가 1명씩 배치됐지만 교과전담교사는 혼자서 영어, 도덕, 실과 전학년 수업을 맡았다. 보건실은 만들어놨지만 아직도 보건선생이 없어 문을 닫아두고 있다.

또한 학교 도서관은 책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비가 오면 물이 줄줄 새서 바닥공사를 세 번이나 하는 바람에 1학기 내내 사용할 수도 없었다. 시청각실도 물이 차 바닥을 뜯어낸 상태다.

다른 학부모 C씨는 "인근의 다른 학교들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무상급식도 좋지만 교육지원청은 지원청이라는 이름 그대로 학교에서 제대로 수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