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신문을 배달하고 낮에는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일하며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던 21살 청년이 있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향인 경북 예천을 떠나 가족과 함께 평택으로 이사 왔지만 청년은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레슬링·태권도·합기도 등 운동에도 능했던 그는 가난했지만 젊음이 있어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이 불량배에게 괴롭힘 당하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그는 불량배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신경이 손상돼 하반신 마비가 됐다. 그를 치료한 의사는 이렇게 운이 없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스포츠 휠체어 제작사 ㈜휠라인의 대표 금동옥(38)씨는 그렇게 1993년 어느 날 평범한 청년에서 장애인이 됐다.

지난 30일 오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휠라인 사무실에서 금동옥씨와 부인 김경자씨가 자신들이 제작한 스포츠 휠체어를 선보이고 있다.

사고 직후 금씨는 병원에 입원했지만 답답한 마음에 한 달 만에 나왔다. 퇴원 뒤 한동안 집에만 있던 금씨에게는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는 1994년 서울 국립재활원에서 CAD(컴퓨터 설계 프로그램)를 배우게 됐다. 그곳에서 1년 정도 기술을 익힌 그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많은 장애인을 보았고, 힘이 돼 준 소중한 사람도 만났다. 당시 그는 재활원으로 자원봉사 나온 한 여고생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녀가 바로 2005년 결혼한 부인 김경자(33)씨다. 금씨는 "재활원에 다니면서 나 말고도 많은 장애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다들 휠체어 타고도 씩씩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재활원에서 알게 된 지인을 통해 휠체어 판매 영업을 시작한 그는 자동차 정비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휠체어를 직접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영업을 하며 눈으로 보고 익힌 휠체어 구조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는 휠체어 제작 기술을 익혀나갔다. 휠체어 제작 공장에서도 4년간 일하며 착실히 경험을 쌓았고, 2001년 6월 휠체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해 활동형 휠체어도 개발하고 제조업 허가도 받았지만 수십대씩 양산해야 하는 일반 휠체어 제작은 자금과 생산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이 따랐다. 혼자 창고를 얻어 휠체어를 만드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는 사고 전부터 좋아하던 운동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휠체어 럭비를 즐기던 그는 아예 럭비용 휠체어를 직접 만들게 됐고 손수 설계부터 용접, 가공까지 해냈다. 2007년부터는 국내 최초로 스포츠용 휠체어 제작을 본격 시작했고, 직접 운동선수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만든 제품을 소개해 신뢰를 쌓았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휠라인은 스포츠용 휠체어 제작사로 인정받으며 작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체육용구 생산업체로 선정됐고, 지난 7월 21일에는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현재 휠라인은 럭비·테니스·배드민턴·탁구·펜싱·댄스·사격·농구 등 8종목의 스포츠용 휠체어를 제작하고 있다. 특히 직원 7명 가운데 5명을 지체·청각장애인 등으로 고용하는 등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장애를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장애인 누구나 할 수 있다"며 "일할 의지를 가진 장애인에게는 우선적으로 일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휠라인 기획재무이사를 맡은 박정훈(38)씨 역시 온몸이 굳는 강직성척추염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박씨는 일산장애인직업학교에서 금동옥씨를 만난 인연으로 휠라인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박씨는 군대 복무를 마치고 SS패션과 LG전자 등에서 근무하던 중 자신의 병을 알게 됐다. 병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휠라인 직원들의 고충도 잘 이해하고 있다. 박씨는 "장애인들이 의지만 있다면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일할 기회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며 "평소 휠체어를 직접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휠라인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휠라인은 국내 최초로 스포츠용 휠체어를 제작하고 있지만 아직 전문 선수들은 수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수입 휠체어를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이 인근 철공소 등을 찾아다니며 수리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자신들의 수입 휠체어 수리를 휠라인에 의뢰하고 있다. 수입차 수리를 국내 자동차업체에 맡기는 격이지만 금씨는 수입 휠체어 수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새로운 해외 기술들을 눈과 손으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충남 천안 나사렛대학교에서 재활공학을 공부하는 그는 "휠체어에 관한 지식을 더 익혀 일반 휠체어까지 제작 범위를 넓히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