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흙더미에 파묻혀 머리만 보이던 그 여학생 얼굴이…."

서울 서초구 래미안방배아트힐 경비원 김영덕(40)씨는 한 달 전 목격했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달 27일 우면산 산사태로 3층까지 흙더미에 파묻혔고, 3명이 숨졌다. 김씨는 사고 당시 우면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에 휩쓸려 가던 김모(여·21)씨를 구출했다. 김씨는 "흙더미에서 건져내보니 다리에 나뭇가지가 박혀 피가 줄줄 흘렀다"며 "지금도 혼자 있을 때는 끔찍한 장면이 수시로 떠오른다"고 말했다.

27일은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악몽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래미안 방배아트힐 주민들이 산사태로 부서진 아파트 앞을 지나고 있다.

26일 오후 찾아간 래미안방배아트힐 아파트 단지 곳곳에는 산사태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파트 1·2층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골조만 남아 폐허로 남아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이 있던 자리에는 부서진 벽돌과 마대 자루에 담은 쓰레기 더미가 널려있었다.

27일이면 우면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가 서초구 일대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를 휩쓴 지 한 달이 된다. 3~4m씩 쌓여 있던 흙더미를 걷어내는 긴급복구는 끝났지만 산사태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

래미안방배아트힐 아파트에 살던 김모(43)씨 가족은 산사태 이후 집을 비우고 여관과 호텔을 전전하다 지난 21일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 수시전형 원서 접수를 앞둔 딸은 밤새 현장 복구를 위해 드나드는 중장비의 소음 때문에 잠을 설쳤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무섭다"며 이불에 오줌을 지렸고 결국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김씨는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비 오는 날 우면산만 쳐다보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부촌(富村)이었던 서초구 형촌마을과 전원마을도 마찬가지. 형촌마을 70여가구 중 20여 채는 주인이 떠나버려 폐가(廢家)처럼 방치돼 있다. 빈집에는 한 달 전 쏟아져 내린 토사와 나뭇가지, 쓰레기가 3m 이상 그대로 쌓여 있었다. 마을 골목길은 곳곳이 끊겼고 '통행금지'라고 쓰인 팻말도 길에 놓여 있었다. 주민 조모(59)씨는 "마을에 빈집이 많아 밤낮 할 것 없이 휑한 느낌이 든다"며 "추석은 다가오는데 우리 마을은 아직도 여름 수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원마을에서 세 들어 살던 5가구(9명)는 집이 토사와 물에 잠긴 뒤 복구되지 않아 주민센터가 임대한 방 2개짜리 반지하 주택에서 함께 살며 피난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서초구는 집에 물이 찬 형촌·전원마을 등에 100만원씩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방배래미안아파트의 경우 완전히 파손된 집은 900만원, 절반 파손된 집은 500만원씩을 보상했다. 서초구는 "더 이상의 보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발하는 피해 주민과 유족들은 서초구와 진익철 구청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