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 문화회관이 빠른 비트의 음악으로 들썩였다. 지나던 주민이 혼잣말로 중얼댄다. "또 시작이군. 왕언니들." 10여명의 여인이 음악에 맞춰 맹렬히 몸을 흔든다. 반짝이 원피스에 뾰족구두를 신었다. "노바디 노바디 벗추!"라는 가사가 맹랑하게 흘러나온다.

평균 나이 65세의 이 여인들은 동대문이 자랑하는 '왕언니클럽'. 100회가 넘는 공연에, 흘러간 가요부터 아이돌 노래까지 망라하는 동대문 명물이다. 그녀들이 또 한 번 '큰일'을 벌일 태세다. '슈퍼스타K-시즌3' 본선에 진출했다. 예선 때 심사위원이었던 '싸이'가 뒤집어졌다는 바로 그 팀이다.

‘소녀시대’ 대형으로. 왼쪽부터 이문실, 전숙, 박덕순, 조순희, 조윤경, 오금자, 송종임, 김옥선, 김순자, 박화금, 정명희씨.

왕언니클럽은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기획한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2008년 결성됐다. 취미생활차 동대문 문화회관에 모였던 '할머니'들이 뜻밖의 실력을 발휘했다. 첫무대였던 평생학습축제에서 인기상을 받더니, 전국실버축제에서는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전국 양로원과 요양원으로 무료공연을 다닌 지 4년째다. "우리 손잡고 덩실덩실 춤추면서 '하루라도 건강할 때 많이 춤추고 노래하라'고 격려해요. '청춘을 돌려다오' 부를 땐 눈물바다지요."

처녀 적 동네 나이트클럽에서 한가락 했던 여인들인가 했더니, 아니란다. "조신하게 애 키우고 살림만 했지요. 늘그막에 내 안에 숨은 끼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하하!" "난 이거 하고부터 우울증이 사라졌다우." 이 날도 절반은 열무 절여놓고 나온 멤버, 집수리 하다 나온 멤버, 며느리 출산 간호하다 나온 멤버들이다.

오디션을 거쳤다고는 하나, 처음부터 실력이 뛰어났던 건 아니다. "혀는 꼬이지, 허리는 안 돌아가지." 남편들 탄압도 장난이 아니었다. "밥 안 하고 어디 가느냐고 엄청 구박했어요. 지금요? 해외공연 안 가느냐고 묻지요. 얹혀 가려고. 하하!"

4년차인 요즘은 연예인 뺨치는 프로정신으로 빛난다. '대지의 항구'부터 '뽀삐뽀삐'까지 고정 레퍼토리만 열 곡을 넘었다. 발성, 춤, 메이크업까지 전문가의 트레이닝을 받고, 의상도 두 곡당 한 벌씩 맞춘다. "'소녀시대'가 우리 의상을 표절했잖우. 우리가 '아메리칸 마도로스' 부르면서 해군 의상을 처음 입었거든. 얼마 뒤 소녀시대가 바지만 뚝 짤라 입고 나오데." 지난해에는 중국 용정까지 나가 공연했다. 2000석이 꽉 찬 대박 무대였다.

그래도 실수는 여전하다. "한쪽엔 구두, 한쪽엔 운동화를 신고 나가 춤을 추고 있지 뭐요." 무대 위 자리 배치 때문에 다투지는 않느냐는 질문에도 왕언니들 솔직하다. "섭섭하지만서도 표현은 안 하지. 실은 가족들이 더 섭섭해해요. 남편이 그래. 너는 왜 만날 구석에 서서 보이지도 않느냐고. 춤바람 난 마누라 다리몽둥이 부러뜨린다고 윽박지를 땐 언제고."

슈퍼스타K 본선 첫무대에 올릴 곡은 시크릿의 '샤이보이'란다. 본선 첫회 탈락 확률이 만만치 않거늘, 왕언니들 김칫국부터 마신다. "상금 타면 우리 엄니 아직 살아 계신 내가 좀 많이 가져가야 쓰겄어." "뭔 소리여. 왕언니클럽 전용 차량부터 사야지." 랩은 도저히 안 돼 편곡할지언정 립싱크는 절대 안 한다는 왕언니들은, "걸어가면서도 외운 가사요, 잠자면서도 연습한 스텝이니 문자투표 좀 많이 부탁드린다"며 너스레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