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엘살바도르 남부 태평양 연안의 작은 도시 콘셉시온 바트레스의 어촌.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멜리사(여·7)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필터도 없는 독한 시가(cigar)였다. 아이는 "머리가 아프지만 벌레에 물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어"라며 담배를 입에 문 채 작업을 계속했다. 담배는 조개잡이 일을 시작한 지난해부터 피웠다고 했다.

엘살바도르 아이들에게 조개잡이는 생존의 문제다. 당장 오늘 저녁 끼니가 걸려있다. 새파란 수평선, 흰 구름 흐르는, 오늘도 즐거워라… ‘진주조개잡이’ 노래 같은 낭만적 풍경은 현실에 없다. 담배를 피워물고 조개를 찾는 멜리사의 모습.

산호세(San Jose)강의 하류인 이곳은 썰물이면 거미줄처럼 엉킨 맹그로브나무의 거대한 뿌리 사이로 넓은 갯벌이 생긴다. 멜리사는 맨발로 나무뿌리를 넘어다니며 해가 질 때까지 조개를 잡았다. 발은 상처투성이였고, 손은 어부들처럼 굳은살이 단단했다. "조개 잡는 게 제일 좋아. 먹을 게 생기니까." 지치고 무표정한 얼굴은 이 말을 할 때 잠시 밝아졌다.

이날 멜리사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7명의 식구들은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빠는 멜리사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가서 연락이 끊겼고, 큰언니 마리아(22)는 남편 없이 3명의 아이들을 키운다. 식구들은 멜리사와 오빠 빅터(10)가 갯벌에서 잡아오는 물고기와 조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멜리사는 여덟 살이 되는 내년부터는 빅터처럼 작은 나무 배에 탄 채로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다.

이 지역 대부분 가족의 사정이 이들과 비슷하다. 농업이 거의 유일한 산업인 엘살바도르는 일자리가 부족해 700만명의 인구 중 200만명이 미국 등 주변 국가에서 날품팔이를 하고 있다. 인구의 35%(245만명)에 달하는 14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부모 없이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70%의 어린이가 초등학교 5학년 이전에 학업을 그만두고 일을 한다.

멜리사는 "학교가 싫다"고 했고, "크면 낚시를 하고 야자나무를 따서 먹을 것을 많이 구하고 싶다"고 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아이에게 학교나 장래의 꿈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엘살바도르 북부 카롤리나(Carolina)시의 한 산골 마을에 사는 호세(10)는 지난 4월부터 온종일 망고를 팔러 다닌다. 호세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형 프레디(15)와 살고 있다. 아버지는 호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났고, 딱 한 번 50달러를 보내온 뒤 연락이 끊겼다. 엄마도 5년 전 새 남자를 만나 집을 나갔다. 올해 81세인 호세의 할아버지 알레한드로씨는 무릎 관절염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 호세와 프레디 형제는 각각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2학년 때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호세는 원래 대학에 가서 언어학을 공부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일을 못하게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꿈도 접었다. 카롤리나 시에서도 많은 어른이 일거리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약 8000명이 사는 이 도시에 12세 미만의 어린이가 절반인 4000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일을 한다. 호세는 "학교에 가면 뭐해요. 먹을 게 나오는 것도 아닌데…"라고 말하고 망고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2009년부터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집에 매월 15달러씩을 지원하며 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걸론 충분치 않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NGO들이 엘살바도르 어린이들이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고 있다. 한국 월드비전도 2007년부터 엘살바도르 각지에 유치원과 어린이·청소년 클럽을 만들어 언어·문자 교육과 어린이 권리 옹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엘살바도르 월드비전 전략기획본부장 오스카(61)는 "아이들이 가난의 굴레에 갇혀서 꿈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아이들이 최소한 끼니 걱정에서는 벗어나야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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