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이 9일 2년 전 정권을 잡을 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자녀수당 인상,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고교 무상(無償)교육, 개별 농가 소득 보전(補塡) 등 4대 복지정책을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일본 민주당은 야당으로부터 적자 공채(公債)발행 동의를 얻어내는 대신 정권교체 때 표를 모아준 복지공약을 포기한 것이다. 공채를 발행하지 않으면 대지진 복구 예산을 짜낼 수 없을 만큼 재정 형편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청년층 폭동이 런던을 비롯, 버밍엄·맨체스터·리버풀 등 전국 대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캐머런 보수당 정권은 작년 5월 출범 이래 파탄 직전에 도달한 재정(財政)재건을 위해 연금을 축소하고 군인·공무원 49만명을 줄이며 대학 등록금을 3배까지 올리는 비상대책을 시행 중이다. 빈곤층 보조금을 줄이고 실업자 수당도 삭감했다. 그동안 누리던 복지 혜택이 축소되자 작년 말에는 대학생들이 국회 건물을 파손하는 데모를 벌인 데 이어 이번에는 테러와 방화(放火)가 난무하는 사태로 번졌다.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에선 나라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를 앞두고 휘청거리는데도 과복지(過福祉)에 길든 국민들이 복지 축소에 항의하며 국가공무원들까지 파업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이탈리아 역시 재정위기로 국채 금리가 독일보다 두 배 이상 치솟았고, 이에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2013년부터 '재정수지 균형'을 정부의 의무로 헌법에 명기하겠다고 했다. 미국도 앞으로 10년간 2조500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국방비 외에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 친서민 복지정책인 건강보험 지출까지 줄여야 할 판이다.

재정이 파탄 직전에 다다른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세금을 올려 복지비용을 확보하기보다는 국채를 무절제하게 발행해 쓰는 점이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세수(稅收)를 늘려 재정적자를 메우려 하지 않고 국채 발행을 얼마나 더 늘릴 것인가를 놓고 벼랑 끝에서 다투다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맞았다. 최근 몇 년 새 재정위기가 촉발한 정치혼란에 휩쓸린 국가들의 국민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2011년·OECD)은 일본이 212.7%로 가장 높고, 그리스 157%, 이탈리아 129%, 아이슬란드 121%, 아일랜드 120.4%, 포르투갈 110.8%, 미국 101.1%로 대부분 과도한 국가 채무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 여·야도 내년 선거를 앞두고 벌써 30조원 규모에 달하는 복지공약을 내놓았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33.3%로 우등생이라고 믿는 모양이지만 10년 새 증가 속도는 OECD 31개 국가 중 최고다. 어느 새벽에 닥칠지 모를 통일비용 54조~546조원 마련을 위해 재정 상태를 더 탄탄히 해놓지 않으면 통일 앞에서 남북이 함께 주저앉는 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들의 조세부담률(GDP 대비)은 2007년 21.0%에서 2008년 20.7, 2009년 19.7, 2010년 19.3%로 매년 줄어들었다. 이 상태에서 정치지도자들이 세금을 덜 받고 복지 혜택을 더 주겠다는 선심 경쟁으로 나라 어깨에 빚더미를 올려놓으려 하고 있다. 그 빚더미를 고스란히 후손(後孫)들에게 떠넘겨 그들이 무책임한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시대를 욕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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