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만들라(Make it simple). 기억하게 만들라(Make it memorable). 시선을 끌게 만들라(Make it inviting to look at). 재미있게 만들라(Make it fun to read)."

20세기 영향력 있는 광고인 중 하나로 꼽히는 레오 버넷(Burnett·1891~1971)이 광고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한 명구(名句)이다. 상품과 기술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진 현재에도 이 문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디어 환경이 변해 창의성과 감성을 담아 소비자에게 촉수를 뻗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얼마 전 프랑스 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최대 광고제 '2011 칸 라이언즈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의 수상작을 통해 최근의 광고 경향을 살펴본다.

생각대로 브레이크… 반응속도 빠른 차 원하신다면(옥외부문 동상)… 고상한 중년 여성의 머리와 하이힐을 신은 발이‘붙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제동력 보강장치 광고. 머리로 생각하면 몸통을 거칠 필요없이 바로 발로 전달되는 것처럼 브레이크 반응 속도가 빠르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엽기적인 이미지로 한눈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옥외 부문 동상 수상작. 광고대행사융 폰 마트/리마트 작품.

소비자, 광고의 일부가 되다

광고가 일방적으로 소비자를 움직이는 시대는 갔다. 이제 소비자도 광고를 움직인다. 옥외 부문 그랑프리를 탄 '디코드 제이 지 위드 빙(Decode JAY-Z with Bing)'이 대표적인 예.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 만든 검색 엔진 '빙(Bing)'을 알리기 위해 비욘세의 남편인 미국의 인기 가수 '제이 지'와 함께 만든 광고 캠페인이다. 제이 지가 '디코디드(Decoded·해독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책이 출간되기 한 달 전부터 350페이지에 달하는 모든 페이지를 다양한 형태의 옥외광고로 만들었다. 광고대행사 드로가5(Droga5)는 옥외 간판, 버스 정류장, 햄버거 포장지, 수영장 바닥 등에 책을 한 페이지씩 래핑(wrapping)해두고 네티즌들이 '빙'에서 힌트를 얻어 이 광고들을 찾아 하나하나 인터넷에 올려 책을 완성하게 했다. 소비자를 광고의 한 부분으로 참여시킨 이 기발한 프로젝트로 빙은 한 달 만에 방문자 수가 11.7% 늘었다. 제이 지 역시 책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옥외 부문 금상을 탄 독일 통신회사 'T-모바일'의 'Life's for sharing(나눔을 위한 삶)' 캠페인은 일반인이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특정 장소에 일시적으로 모여 이벤트를 벌이는 것)의 일부로 참여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영국 히스로 공항 도착장에서 여행객으로 가장한 배우들이 갑자기 일반 여행객들에게 아카펠라 노래를 불러준다. 처음엔 놀랐던 관객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즐기게 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뒤 유튜브에 올려 전 세계 네티즌에게 감동을 전했다. 광고대행사 오리콤의 이충한 전략팀장은 "소셜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영역을 넘나드는 광고 유형이 많아지고 있다"며 "소비자와 광고의 인터랙티브(상호작용), 컨버전스(융합)가 새로운 화두가 됐다"고 했다.

미디어 융합이 만들어낸 신개념 광고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미디어 부문 그랑프리를 탄 제일기획의 '홈플러스 지하철 가상 매장'은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이미지로 가상 매장을 만든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진열대 속 제품 이미지의 QR 코드를 읽어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반전과 위트

광고에서 아이 캐처(eye catcher·눈길을 끌게 하는 시각적 요소)는 필수불가결하다. 개성 과잉 시대, 웬만한 아이디어에는 코웃음 치는 냉소적 소비자들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재기 넘치는 광고들이 건재를 과시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제동력 보강 장치 '브레이크 어시스트 플러스' 광고는 세련된 중년 여인의 머리가 하이힐을 신은 발과 연결되는 엽기적인 모습이다. 머리에서 발이 바로 이어지듯 브레이크 반응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극적인 이미지. 옥외 부문 동상을 받았다.

인쇄 부문 금상을 받은 태국 '레킷 밴키저'의 살충제 광고는 카멜레온과 개구리가 혀를 쑥 내밀어 벌레를 잡아먹는 듯한 이미지로 단박에 시선을 빨아들인다. 옥외 부문 은상 수상작인 태국 MMP의 일회용 랩 광고는 생선과 돼지, 닭을 랩처럼 죽 잡아 늘이는 듯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극도의 과장과 반전 기법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태국 광고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JWT 상하이가 만들어 인쇄 부문 그랑프리를 차지한 샘소나이트의 여행용 가방 광고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은 비행기의 일등석과 수하물칸을 천국과 지옥으로 선명하게 대비했다. 자사의 가방은 내구성이 강해 지옥처럼 엉망진창인 수하물칸에 들어갔다 나와도 반짝거린다는 것을 표현한 작품이다.

현대인을 달래는 복고풍 광고

디지털화에 대한 반작용일까. 아날로그 냄새를 물씬 풍기는 광고가 힘을 얻고 있다. 인쇄 부문 동상을 받은 '트위터'의 광고는 마치 1900년대 초반 신문 광고같이 누런 종이에 복고풍 일러스트로 표현됐다. 광고를 제작한 브라질의 광고대행사 모마 프로파간다는 온라인 문화의 첨병과도 같은 트위터의 차가운 디지털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한 도구로 과거 귀환을 선택했다.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빈티지 인형 '신디'에게 사탕을 물린 듯한 모습의 추파춥스 미니 광고도 옥외 부문 동상을 탔다.

피로에 찌든 현대인들을 위한 약 광고엔 온갖 기지가 동원됐다. 디자인 부문 은상을 탄 아랍에미리트 제약회사 '파라스 파마'의 두통약 광고는 코너 벽면과 천장을 따라 사람 이미지를 절개해 붙여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Splitting Headache)'이라는 작품명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광고대행사 BBDO 게레로가 만든 바이엘 필리핀의 두통약 광고는 목수 한 명이 망치로 바로 앞에 앉은 목수의 머리에 못을 박는 듯한 장면을 연출해 두통의 고통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