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세계 최초의 여성 K1 선수인 임수정이 지난달 12일 일본 지상파 방송 TBS의 ‘불꽃 체육회 TV2011’ 프로그램에 출연해 남성 코미디언 3명과 3분 3라운드의 대결을 벌인 영상 캡처화면.

“복수하겠다. 제대로 다시 해 보자.”

'얼짱 파이터' 임수정(25)은 최근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던 '남성 3인방'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3인방 속엔 전직 격투기 선수도 포함돼 있다.
 
세계 최초의 여성 K1 선수인 임수정은 지난 3일 일본 지상파 방송 TBS의 '불꽃 체육회 TV2011' 프로그램에 출연, 남성 코미디언 3명과 3분 3라운드의 대결을 벌였다. 임수정이 혼자 3라운드를 뛰고, 비(非)전문가인 상대 측은 1명이 1라운드씩 돌아가며 뛰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방송사 측은 첫 라운드에서 임수정과 30kg 이상 체중 차이가 나는 전직 K1 선수를 투입, 임수정에게 거친 공격을 퍼붓는 상황을 유도했고, 임수정은 고전 끝에 간신히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임수정은 29일 조선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속상하고, 분하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화려한 기술만 보여주면 되는 일종의 '쇼'라고 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녹화에 나섰는데, 갑자기 격투선수 출신이 정색을 하고 덤벼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TBS 측이 방송 출연을 제의해온 것은 임수정이 독일에서 실전 시합을 치른 지 일주일쯤 뒤인 지난달 8일쯤. 방송사 측은 '세계 최초의 여성 K1 선수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일본 시청자들에게 알리자는 것이 방송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임수정은 "지난 경기에서 무릎을 다쳤다"고 알렸지만, TBS측은 "어차피 쇼니까 아무래도 괜찮다"며 출연을 거듭 요청했다.
 
요청을 받아들인 임수정은 사흘 뒤인 11일 일본으로 건너갔고, 12일 녹화장에 들어섰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녹화장에서 방송사 측은 임수정에게 방송용 풀 메이크업을 시키고, 헤어 스타일까지 세팅했다. 이런 가운데 제작진은 경기 시작 직전까지 "(상대방의) 얼굴을 살살 때려달라", "얼굴을 때리지 말아달라" 등의 주문을 했다가 취소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도 보였다.
 
또 원칙대로라면 남자들보다 체중이 가벼운 임수정에게는 훨씬 가벼운 글러브가 주어져야 했지만, 제작진은 임수정의 손에 상대방 남성과 똑같이 묵직한 글러브를 끼워줬다. 남성에게는 보호장구를 착용시켰지만, 이 역시 임수정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편안한 마음으로 링에 올라선 임수정은 경기 시작과 함께 상대방에게 선제공격을 당하고 8초 만에 바닥에 쓰러졌다. '페어플레이를 하자'는 의미로 공(gong)과 함께 서로 글러브를 맞부딪힌 순간 날아온 기습적인 연속 킥 공격이었다.
 
임수정은 "눈빛이 쇼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8초 만에 임수정에게서 첫 다운을 끌어낸 인물은 카스가 토시아키(春日俊彰·32). 2007년 K1 무대에 섰던 전직 프로 선수였다.
 
카스가 공격은 임수정이 일어난 뒤에도 거세게 이어졌다. 상황에서 심각해지자 방송국 관계자들조차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고 임수정은 전했다.
 
"1라운드가 너무 과격하게 흐르자 제작진도 당황한 듯 경기를 잠시 중단시켰어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촬영을 그만둘까 고민했지만, 후에 더 큰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선뜻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어요."
 
결국 그는 고전 끝에 간신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방송사 측에 고용된 통역관조차 임수정에게 "속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임수정은 무엇보다 프로 선수로서의 자존심이 구겨진 게 분하다고 털어놨다.
 
"사람들에게 '여자 선수 수준은 이 정도 밖에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어요. 혼자서 인터넷에 올릴까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프로선수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가 돼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제가 잘못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이렇게 알려져 버려서 창피하네요."
 
임 선수는 이번 경기로 독일 시합에서 당한 부상이 더욱 심해졌다. 왼쪽 정강이 안쪽 부분의 근육이 파열됐고, 피가 고여 완전히 회복되는 데까지 두 달 정도가 걸릴 전망이다.
 
그는 "한국에 임수정이란 선수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방송에 나갔었는데,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려 한국 팬들께 너무 죄송하다. 앞으로 경기 내·외적으로 이번 실수를 꼭 만회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