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길엔 가축 배설물이 뒹굴고, 더러운 거품이 이는 개울물은 죽어 있다. 땟물에 전 옷을 입은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버짐이 하얗게 핀 얼굴로 구걸을 하거나 고철을 주우면서 하루를 보낸다. 가난 때문에 여자 아이들은 13세만 되면 조혼(早婚)을 강요당한다.

아프리카가 아니다. 유럽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월드비전 구호팀과 함께 방문한 동유럽 발칸반도의 소국(小國) 알바니아는 중세(中世)로 돌아가 있었다. 유럽연합(EU) 통계청에 따르면 알바니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유럽연합 27개국 평균의 29%에 불과하다. 유럽에서 코소보에 이어 둘째로 가난해 '유럽의 소말리아'라고 불리는 곳이다.

알바니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 철저한 폐쇄 정치를 펼친 끝에 유럽 최빈국(最貧國)이 됐다. 독재 시절 군비 증강에만 신경을 쓰면서 만들어놓은 70만여개의 벙커가 흉물스럽게 흩어져 있다.

평일임에도 20~50대의 청·장년들이 도심을 어슬렁거렸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알바니아 월드비전 직원 크리스텔라(26)는 "연줄이 없거나 뒷돈을 대지 못하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곳 아이들의 꿈은 '빨리 어른이 돼서 그리스마케도니아로 밀입국해 돈벌이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열다섯 살짜리 엄마 실바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차로 5시간 정도 달려 디브라지역의 주요 도시 페쉬코피에 도착했다. 도심 하천변에는 얼기설기 엮은 천막 20여개가 들어서 있었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캔과 양철 조각 등을 모아놓은 고철 더미가 쌓여 있었다.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쓰레기를 태우는 매캐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딸 아델라이다(2)를 안은 열다섯 살짜리 엄마 실바가 거리에서 주워온 캔을 포대에 옮겨 담았다.

상수도시설이 없는 이 천막촌엔 15가구 200여명의 빈민이 모여 산다. 대가족제가 남아 있어 가구당 10여명이 보통이다. 이들은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고철을 모아 생활한다. 아이들은 폐타이어와 깨진 유리 조각, 고철 더미 위에서 다 찢어진 신발을 신고 뛰어놀았다. 씻은 지 얼마나 됐는지 가늠도 안 되는 아이들의 얼굴은 피부병으로 흉터투성이였다. 60여명의 아이들 중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실바는 학교 근처에 가본 적 없고, 남편(18) 역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닌 게 전부다. 실바는 "입을 줄이려고 아버지가 13세 때 시집 보냈다"며 "학교 같은 건 꿈도 못 꿔봤다"고 말했다. 이곳엔 실바처럼 18세 미만의 엄마가 3명이나 있다. 법적으로 18세 미만은 결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자녀는 등록도 안 돼 있다. 실바의 시어머니 미모자(38)는 "가난 때문에 이곳 여자들은 13~16세에 결혼한다"며 "다들 그렇게 사니까 불만을 가져본 적 없다"고 말했다. 실바는 "난 이렇게 살지만 딸만큼은 학교에도 보내고 번듯하게 키워보고 싶다"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알바니아 어린이들에게 21세기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여전히 중세 암흑시대를 살고 있으며‘꿈과 희망’이란 단어에 낯설어한다. 디브라 지역 페쉬코피시(市)하천변에 있는 천막촌에서 한 꼬마 여자 아이가 주워온 양철통을 들고 서있다.

◆돈벌이가 꿈인 8세 올시

페쉬코피 도심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인 체투시 마을. 돌과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흙집엔 올시(8)와 메기(5) 남매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외양간과 재래식 화장실이 집에 붙어 있어 퀴퀴한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고, 파리떼가 들끓었다. 나무를 때서 요리하는 스토브 위엔 텅 빈 솥만 걸려 있었다. 온종일 마른 빵 한 조각 먹지 못한 올시 남매는 퀭한 눈으로 나무하러 간 큰형 모시(15)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시와 메기는 또래 아이들보다 두세 살 어려보였다.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후 매일 술로 지내는 아버지는 어디서 또 술에 곯아떨어져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심장병에 우울증을 앓는 엄마는 남매를 돌보지 않고 있었다. 올시 가족의 수입은 한 달 정부 보조금 4만여원이 전부였다. 5남매를 돌보는 건 장남 모시의 몫이었다.

구멍이 뚫려 하늘이 훤히 보이는 다락방엔 모시가 동생들을 위해 얻어온 옷가지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쌓여 있었다. 수㎞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 와야 하는데, 몇년간 빨래도 못했다고 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사내아이처럼 짧게 머리를 깎은 메기가 눅눅한 옷더미에서 알록달록한 옷을 찾아내 "이게 제일 예뻐요"하며 파란 눈을 반짝였다. 우울한 표정으로 메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오빠 올시에게 꿈을 묻자 "없다"고 했다. "가장 하고픈 게 뭐냐"고 묻자 올시는 "빨리 커서 그리스로 가서 돈 버는 게 꿈"이라고 했다.

"엄마 병 치료해주고, 메기에게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요." 커다란 눈이 눈물로 흐릿해졌다.

알바니아 월드비전 홍보팀장 제리(64)는 "가장 슬픈 건 아이들이 꿈조차 꿀 수 없는 현실"이라며 "아이들이 그리스나 이웃 나라로 취업 이민을 가는 것 자체가 어렵고, 설사 외국에 나가더라도 밀수나 마약 등 불법적인 일에 이용당하기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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