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박영규 지음).

나주 오씨인 오모(62)씨가 베스트셀러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박영규 지음)’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허위사실을 써 자신의 선조인 고려 장화왕후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출판사 웅진씽크빅과 윤석금 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법원이 전부 기각 판결을 내렸다고 17일 밝혔다.

태조 왕건은 궁예 휘하에 있을 때 전남 나주를 정벌하고 지역 호족인 오다련의 딸과 혼인했는데, 그가 장화왕후 오씨다. 장화왕후는 샘물을 담은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왕건에게 건넨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왕건과 오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고려 2대 임금인 혜종이다.

하지만 이 책은 ‘혜종의 출생과 관련하여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하나를 전하고 있다’면서 ‘왕건은 나주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오씨를 만났다. 이 때 왕건은 비록 동침은 했지만 그녀의 출신이 미천한 것을 염려하여 임신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돗자리에 사정(射精)하였는데, 오씨가 이것을 즉시 흡수하여 임신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 달 후 아이를 낳았더니 이상하게도 아이의 이마에 돗자리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고 썼다.

오씨는 소장(訴狀)에서 “이 책은 임신에 관한 과학적 진실에 명백히 반하는 허위 사실을 그대로 옮겨 망인(亡人)인 장화왕후와 후손인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장화왕후는 미천한 집안 출신이 아니라 신라 6두품 귀족의 자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웅진씽크빅 측은 “이 책은 고려사의 내용을 충실하게 서술한 역사서로, 한 집안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역사적 기록”이라고 반박했다.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은 200만권이 넘게 팔린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속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재판장 신광렬)는 최근 “고려사는 김종서, 정인지 등이 세종대왕의 교지를 받아 만든 고려시대의 정사(正史)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라며 “비록 그 내용이 (과학적으로) 진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려사의 사료적 가치를 종합할 때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망인이나 후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볼 수 없고, 명예훼손의 책임을 넓게 인정하면 역사적 사실에 관한 재조명은 사실상 불가능해 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