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학생들의 성(性)문화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이성과의 성관계 장면을 인터넷에 올리고, 거액을 주고 성관계 맺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에 다니는가 하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하룻밤 파트너를 찾아다니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고려대 의대생들의 동기 여학생 성추행 사건도 이 같은 '막장 성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 셈이다.

성관계 후기 남기고 인증샷까지

지난 8일 대학생 회원이 대부분인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한 카페. '블루'라는 아이디를 가진 회원은 "두 번째 부킹에서 만난 이날의 홈런녀는 K대 법학과 2학년. 간단히 술 마시고 모텔에 갔습니다. 집에 데려다 준 후 전화번호 삭제"라는 글을 올렸다. 글 아래에는 여학생이 벗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속옷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홈런녀의 '홈런'은 성관계를 의미하는 은어. 이 회원이 남긴 글은 '홈런 후기', 속옷 사진은 '홈런 인증'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카페의 다른 글에는 이성과 어떻게 만났는지, 모텔에 갈 때까지의 과정, 상대 여성의 나이와 신체 사이즈는 물론 학교·전공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사실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글의 말미에는 사진이 붙어 있다. '인증샷'이라고도 하는 이 사진 중에는 성관계 후 자고 있는 이성의 모습은 물론 가슴, 성기, 얼굴 등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도 있다. 심지어 '구장 입장권'(모텔 신용카드 영수증)을 첨부하는 회원도 있다. 이런 '인증샷' 아래에는 "대박이다" "부러워요" "저도 가르쳐주세요" 등 수백개의 댓글이 달린다. 글을 남긴 회원은 부러움을 받는 동시에 이들 세계의 '영웅'이 되는 것이다. 이들 카페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회원들끼리 나이트클럽으로 '사냥'을 떠나자는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서울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 4학년인 최모(26)씨는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원나잇'을 즐기기 위해 클럽에 간다"며 "누가 홈런을 많이 치는지 경쟁을 하고 카페에 글도 남긴다"고 했다.

다른 포털사이트에서도 유사한 카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인기 카페는 회원이 5만명을 넘는다. 글 내용에 '계절학기' '수강신청' '취업'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 대학생 회원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남성 회원이 많지만 일부 카페는 여성만 회원으로 받고 있으며, 여성이 올린 '인증샷'과 '후기'도 가끔씩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카페들은 대부분 2008년 이후 개설됐으며 최근 회원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한 인기 카페의 경우 글과 사진의 절반이 올해 올라온 것이었다. 특히 카페의 글에는 은어가 많아 기성세대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 처음 보는 이성과 전화번호를 교환했을 경우엔 '#-close', 키스를 했다면 'k-close'라고 칭하고, 성관계를 했을 경우 'F-close'라고 표시한다. '홈런'과 달리 성관계를 하지 못하고 돈만 쓰고 나왔을 경우엔 '내상'이라는 용어를 쓴다.

상대 여성을 지칭한 용어도 노골적이다. 얼굴과 몸매가 뛰어난 여성은 '엘프(요정이란 의미)', 평범한 여성은 '휴먼(사람이란 의미)', 외모가 떨어지는 여성을 '오크(괴물이란 뜻)'로 표현하는 식이다. 인터넷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름으로 이성관계를 게임에 비유하고 있는 것.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회사원 정모(29)씨는 "후배들과 모이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며 "같은 20대인데도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고 했다.

스마트폰, 막장 성문화 부채질

최근 보급되고 있는 스마트폰은 막장 성문화의 주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률과 인터넷 카페 게시물의 증가 시기가 일치하고, 선정적 게시물도 최근 집중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의 수는 지난 1월 기준으로 50%를 돌파했다. 스마트폰에는 고화질의 카메라 기능이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 기능까지 있어 손쉽게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성과의 즉석 만남을 가능하게 해 준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은 일회성 성문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인터넷 카페 등에는 '하데로 홈런친 이야기' '1㎞ 홈런 인증' 등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데(하이데어)와 1㎞는 즉석 만남을 주선하는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이다. 이용자가 100만명이나 되는 이런 애플리케이션은 반경 1㎞ 안에 있는 가입자들의 목록을 보여주고, 전혀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쪽지를 교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대학생 김모(26)씨는 "여자들에게 만나자는 쪽지를 쭉 돌리다 보면 한두 명 답이 온다"면서 "만나는 과정이 쉬울수록 그날 밤을 같이 보낼 확률도 높다"고 했다. 이런 애플리케이션의 보급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의 연애, 즉 소셜데이팅(Social Dating)이란 용어가 탄생했지만 건전한 교제보다는 '하룻밤 교제'에 사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이다.

성관계 가르치는 학원도

비뚤어진 성문화는 새 직업도 만들어냈다. 할리우드 영화 '미스터 히치(Mr. Hichi)'와 우리나라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에 나오는 이른바 연애 컨설턴트다. 연애 컨설턴트는 연애를 못하거나 짝사랑에 잠 못 이루는 남녀를 구제해 주는 직업으로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연애 컨설턴트의 역할이 변질돼 길거리와 클럽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법,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성관계를 갖는 방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픽업 아티스트'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남성 전용 인터넷 카페에서 주로 활동한다. 자칭 '연애 고수' '작업의 달인'들이 픽업 아티스트이다. 이들은 주로 대학생 회원들을 상대로 돈을 받고 '비법'을 가르친다. 통상 온라인 수강료는 30만원, 오프라인 수강료는 150만원쯤 한다. 단과반과 종합반으로 나뉠 뿐 아니라 1박 2일 동안 집중 교육을 받는 '부트캠프(신병훈련소)'까지 있다. 길거리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헌팅이론', 나이트클럽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클럽이론', 즉석 만남에서 잠자리까지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는 '홈런이론' 등 학과목도 다양하다. 픽업 아티스트 A씨는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주요 수강생"이라며 "말하는 법부터 (전화)번호 따는 법, 홈런치는 법까지 다 가르쳐준다"고 했다. 그는 또 "직접 제작한 교재를 사용하는데, 강의를 듣고 나면 인생이 180도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막장 성문화에 대해 대인관계의 왜곡은 물론 사생활 침해 등 우리 사회에 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즉흥성에 의존한 인간관계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깊숙한 관계가 되기 위해선 인간관계의 친밀도가 필요한데 젊은이들 사이에선 인터넷 기술 등의 발달로 인스턴트 섹스의 갈망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전 교수는 또 "인증샷 등을 볼 때 개인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도 느슨해지고 있다. 기형적이고 불구 상태의 대인관계가 사회에 만연할까 우려스러울 정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