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미 해병대 훈련병이던 린 매클루어는 고된 훈련 과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 병사'였다. 참다 못한 교관은 군기(軍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매클루어에게 '나무 방망이'로 하는 백병전 훈련을 지시했다. 그런데 정도가 지나쳤다. 매클루어는 이 과정에서 줄기차게 얻어맞았고 나중엔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쓰러져 숨졌다.

이처럼 미 해병대 역시 가혹 행위가 여러 번 문제가 된 적이 있다. 1992년 개봉한 영화 '어퓨굿맨(A Few Good Men)'에서는 해병대 선임병들이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전출을 요구하는 후임병에게 '코드 레드(Code Red)'라는 강도 높은 얼차려를 주다 목숨을 잃게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미 해병대 내 가혹행위를 다룬 영화 ‘어퓨굿맨(A Few Good Men)’의 한 장면.

미 해병대는 '매클루어 사건' 이후 가혹 행위 근절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해병대 정신을 말살하려 한다"는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차츰 정착됐다. 미 해병대는 오히려 "후진적인 악습(惡習)을 철폐해야 지상 최고 군대로서 명예와 긍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외쳤다. 아직도 '면담 시간(office hours)'이란 이름으로 사적인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미 해병대는 인사 기록과 징역형, 계급 강등, 봉급 삭감 등으로 제재 조치를 내린다. 전 장병은 사적 처벌을 지체 없이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미 해병대가 환부(患部)를 도려내는 아픔을 딛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우리 해병대도 이번 강화도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후진적인 악습을 뿌리 뽑고 한 단계 발전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해병대 사령관 출신인 한 예비역 장성은 "현역 시절부터 악습을 없애려 했는데 아직도 그대로라니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아 해병대가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병대 사단장을 지낸 예비역 장성도 "이런 가혹 행위를 해병대 전통이라고 자랑한다면 극히 무책임한 것"이라며 "후진적인 군기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해병대사령부는 8일 이번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 경기도 발안 사령부에서 주요 간부 120명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지휘관회의를 열고 '가혹 행위자 3진 아웃제' 등 병영 부조리 근절 대책을 마련했다. 3진 아웃제는 상습적으로 구타와 가혹 행위를 하는 병사를 현역 복무 부적합자로 분류, 병영에서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전반기에 비해 해병대 내 총기사고와 구타·가혹행위·성추행 등이 166건에서 205건으로 23%나 증가한 것과 관련, 기수열외(해병대식 집단따돌림), 호봉제(병사 계급별 차별 행위) 등을 없애고 인성(人性) 결함자의 입영도 차단키로 했다.

군 소식통은 "몇 년 전 해병대 특유의 강도 높은 야간 점호인 '순검'(巡檢)을 없애려다 일부 예비역이 반발해 실행에 못 옮긴 일이 있다"며 "낡은 의식을 극복해야 해병대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