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기준(가명·35)씨는 지난 주말 여름휴가 여행을 떠나려다 포기했다.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품에서 자란 다섯 살배기 외동아들이 할머니와 떨어져 아빠 엄마와 여행을 가길 싫어했기 때문이다. 최씨의 어머니는 몸이 불편해 일주일 여행을 가기 힘든 형편이다.

"나는 할머니랑 어린이집 친구랑 노는 게 더 좋단 말이야. 엄마 아빠는 토요일에만 오는 거잖아!"

최씨는 "수영장 가자. 장난감 사준다"고 얼렀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애를 남의 손에 맡길 순 없고, 아내도 대전지사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일흔 노모가 키워주셨는데 우리 아들한테 과연 아빠 엄마는 뭔지….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육아(育兒)가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등장해 영유아보육법을 제정(1991년)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보육시설은 다소 늘어났지만 지금도 육아의 '고통'을 겪는 젊은 부모들이 많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면서 육아는 조부모 등 온 가족을 힘들게 하는 문제로 떠올랐고 출산 기피현상으로 이어져 국가적 현안으로 부상했다.

국·공립 보육시설인 서울 강남구 S어린이집. 대기자 수(數)가 0세아(만 1세 미만 아이) 1222명, 1세아 933명 등 2일 현재 3266명이다. 0세아의 경우 대기번호가 무려 1222번까지 나간 것이다. 우리나라는 0세아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비율이 약 28%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보육비가 싸고 교육 여건이 좀 더 나은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렵다. 서울의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자 수만 32만4000여명에 이른다. 그래서 요즘 엄마들은 임신을 확인하면 곧바로 구립어린이집 등록부터 한다. 임신 6개월째인 서울 마포구 강모(35)씨는 "아이들이 뱃속에서부터 입소 경쟁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 말 12세 이하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의 77.9%, 남성의 53.6%가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자녀 양육문제'를 꼽았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근로시간이 긴 반면 직장에서 육아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미흡하다.

이런 현실에서 믿고 맡길 만한 보육시설도 부족하다 보니 시부모에게, 친정부모에게, 육아 도우미에게, 어린이집에 애를 맡기고 데려오느라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여섯 살, 네 살짜리 아들 둘을 키우며 맞벌이하는 김모(41·공무원)씨는 "애들이 자고 있는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아내가 '애 얼굴도 못 보면서 이렇게 굳이 직장을 다녀야 하느냐'며 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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