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영양사협회가 정치인 로비자금을 걷고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협찬금을 받고 있으며 정부정책에 반발해 공무원 신분의 회원들에게까지 집단행동을 지시해 물의를 빚고 있다. 영양사협회는 일선 학교 영양교사 4000여명을 비롯, 공·사기업에 취업한 영양사 등 1만여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이 중 절반이 공무원 신분이다. 일부 회원들은 이 같은 협회의 방침에 반발해 회비 납부를 거부하는 등 내홍(內訌)도 겪고 있다.

정치자금 모금했다가 돌려줘

본지가 입수한 지난해 10월 16일 서울영양교사회 운영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협회는 국회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 후원 건을 논의한 뒤 회원 1인당 3만원을 걷기로 결정한다. 여기에 한국영양교육평가원 설립을 위해 회원들이 이미 납부했던 8000원도 후원금으로 전용(轉用)하기로 한다. 이들은 이날 회의에서 3만원에 대한 회비 명목을 '식생활 교육자료집 발간비'로 정하는 등 정치자금 모금 사실에 대한 '은폐'를 시도했다.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 영양교사회도 회의를 열어 정치 후원금 안건을 다루고 이와 비슷한 결정을 내렸고, 협회 내부에 억대의 정치자금이 조성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지부가 후원금 납부를 거부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면서 협회는 회원들에게 돈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협회 관계자는 "영양사들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협회가 힘쓰는 것은 알지만, 공무원 신분인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회원들 사이에 많았다"고 했다.

지난해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가 특별회비를 걷어 국회의원에게 제공했던 사실이 공개돼 문제가 됐던 '청목회 사건'과 비슷한 일이 영양사협회에서 벌어졌던 것. 영양사협회는 회원 권익보호와 전문성 확보 등을 위해 1969년 설립됐다. 2007년부터 학교 영양교사가 일반 교사와 마찬가지로 국가직 교사가 되면서 영양사들의 인기가 높아졌고, 협회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 총선에선 협회장 출신이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수익사업으로 전락한 학술대회

협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가 수익사업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협회는 매년 7월 서울의 특급호텔에서 전국영양사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오는 21~22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올해 행사에는 2000명이 넘는 영양사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름만 학술대회이지 협회가 돈을 모으려는 행사라는 비판이 나온다는 것.

협회는 식품업체들을 학술대회에 후원단체로 초청한다. 협회 홈페이지에는 2000만원의 협찬금을 낼 경우 무료부스 5개를 제공하고, 1500만원을 낼 경우 무료부스 3개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등 업체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협회는 식품 관련 기업에게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일선 학교 등에서 급식 자재 선택권이 영양사에게 있기 때문. 그래서 업체 입장에서도 학술대회를 후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 영양사는 "학술대회가 언제부턴가 식품업체들의 홍보행사로 전락했다"며 "말만 학술대회일 뿐 협회의 모금활동에 불과하다"고 했다.

회원들이 내는 학술대회 참가비에도 문제가 있다.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영양사는 1인당 6만원의 참가비를 낸다. 그런데 영양교사들은 이 행사 참가를 출장 처리하고 그 경비를 학교에서 돌려받는다. 학술대회 참가비가 국고(國庫)에서 나가는 것이다. 결국 영양사협회 학술대회는 정부 예산과 업체 후원금으로 치러지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 회원에게 집단행동 지시

협회는 최근 회원들에게 정부 정책을 비판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 6월 초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는 '영양사 보수교육을 올해 당장 시행해달라'는 민원으로 '도배'가 됐다. 복지부가 내년에 제도 시행을 하려하자 이에 반발하는 내용이다.

협회는 4가지 유형의 '모범 민원'을 회원들에게 보내면서 글을 올리도록 독려했고, 지부별로 민원제기 건수를 파악해 협회에 보고토록 했다. 회원 상당수가 공무원인데도 이들에게 집단행동을 지시한 것이다. 현행 법은 공무원들의 집단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상당수 영양사들이 이익단체의 조직원이 되어 국가 정책에 반기를 드는 데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교육 제도를 당장 시행해야 한다는 협회의 입장에 대한 내부 불만도 만만치 않다. 한 영양교사는 "이미 위생교육을 받아서 굳이 보수교육을 올해 받을 필요가 없다"며 "결국 협회가 자금 조성을 위해 그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고 했다. 보수교육은 협회 주관으로 실시하는데, 이때 회원들은 교육비로 3만원을 협회에 납부한다는 것이다. 한 영양교사는 "협회 기금 조성에 공무원이 동원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내부에 자성 목소리

일부 회원들은 협회 운영의 불투명성을 지적했다. 협회가 다른 단체와 달리 회원들에게 연말 회계연도 정산에 따른 사업 운영비 공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부 회원들이 회칙과 사업결산 내용을 공개하라고 협회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요청했으나, 협회는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한 영양교사는 "협회가 무슨 사이비종교 집단이나 공산당처럼 자금 집행 등의 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며 "소수 대의원들만이 협회 운영 과정을 알고 있다"고 했다.

영양사협회를 사단법인으로 인가한 보건복지부 역시 협회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협회에 대한 국고 지원이 없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다. 협회의 비리나 잘못을 견제하고 감시해줄 내·외부 기관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내부에서 협회의 자성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높다. 협회의 한 지부 간부는 "새벽 5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근무하는 영양사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협회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지금까지의 오류를 딛고 투명한 협회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대한영양사협회측은 정치자금 모금과 관련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학술대회에 대해선 "영양사들이 새로운 제품과 기기를 아는 것이 중요해 학술대회에서 업체에 홍보부스를 제공하고 협찬금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협회는 또 "복지부에 집단 민원을 제기토록 한 것은 영양사 권익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