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우들은 준비도 안 하고 기준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를 하겠다고 한다."(이순재), "(이순재씨 지적에) 굉장히 공감한다. 과거엔 방송사에서 신인 배우들을 (공채해) 일정기간 훈련시켰지만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없어졌다."(정보석)

연기자들 스스로도 이렇게 말하듯, 방송가에서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젊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일부 아이돌 가수들의 갑작스러운 연기 데뷔가 부쩍 늘면서 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SBS가 24일부터 연기자 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을 방송한다. 200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방송사의 공채 탤런트 선발이 사실상 부활되는 셈이다.

본지에서는 이를 계기로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 가운데 최고의 연기력을 갖춘 사람은 누구인지를 설문조사했다. 유명 드라마 작가·연출자·교수 10명에게 "각자 생각하는 '최고의 연기자'를 뽑아달라"고 요청했고, 응답자가 선택한 1~5위에 대해 각 5~1점을 주는 방식으로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정했다. 하지만 순위에 오른 배우들이 이미 각자의 세계를 구축한 대형 스타들인 만큼 지면에 순위와 점수를 공개하는 방식은 피했다. 최고 배우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구체적 평가는 그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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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배우들의 힘

설문결과 최상위권에는 오랜 연륜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원로 배우들이 촘촘하게 자리 잡았다. 이순재에 대해서는 "희비극 모든 장르에서 파워를 발휘하는 연기의 달인. 부지런하고 근면한 배우로 후배들 모범이 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불암에 대해서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김혜자는 "순박하고 어수룩해 보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연기자"로 통했다.

10위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1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연기자들 가운데서는 임동진의 경우 "가장 정확하게 모국어를 구사하는 연기자로 극적인 대사를 가장 극적으로 처리할 줄 안다"는 평을 들었다. 강부자에 대해선 "연기의 교과서로 삼을 만하다"는 호평이 나왔다. 신구는 "대쪽 같은 선비에서 바보 연기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폭이 커서 힘이 있다. 다만 지나친 카리스마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견 연기자 김해숙김영애에 대해선 각각 "작품 속에 자신을 던지는 배우로 엄마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로열 패밀리'를 통해 깊고 독한 연기가 돋보였다"는 응답이 나왔다. 고두심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역할 창조에 있어 시청자들에게 신뢰감을 준다"였다.

한국 연기자의 주축은 30~40대

전문가들은 CF 등에서 상한가를 누리고 있는 20대 젊은 스타들에게는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대신 다양한 작품에서 팔색조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30~40대 중장년 배우들을 택했다.

"연기 머리가 너무 좋다. 특히 멜로 연기에 관한 일인자"라는 이병헌과 "배역의 캐릭터를 잘 살린다. 표현력이 빼어나다"는 고현정에 대한 지지가 특히 많았다. 김명민("역할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그에 따른 구체적 형상화에 능하다"), 전도연("배역의 나이를 초월하는 연기파이면서 친화력도 뛰어나다"), 전광렬("배역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맛있는 연기"), 김희애("이 나이 또래의 여배우 중 가장 자기 색깔이 또렷하다")도 고른 점수를 얻었다.

10위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정보석장혁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각각 "극과 극의 캐릭터를 자유롭게 오가는 힘이 대단하다", "'추노'를 통해 엄청난 파워를 지닌 배우로 거듭났다. 그간의 성실한 노력이 빛을 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래시계'의 명콤비 최민수박상원도 빠지지 않았다. 각각 "어떤 역을 맡더라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해 시청자를 전율하게 한다" "연기의 흐름을 부드럽게 가져가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한류스타 배용준에 대해선 한 응답자가 "진실한 연기를 보여준다"고 했다. 한 응답자는 박신양에 대해 "작품 몰입도와 분석력이 때로 연출가를 능가할 정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