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싱젠.

"열 살 무렵입니다. 친척 아저씨로부터 예쁜 노트 한 권을 선물 받았죠. 그 노트를 글과 그림으로 꽉 채웠습니다. 너무 예뻐서 안 쓰고 안 그릴 수가 없었거든요. 내 문학의 시작은 아마 그때부터일 겁니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최하는 2011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중국 출신 가오싱젠(行高健·71)이 24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예술지상주의자였고, 무엇보다 문학지상주의자였다.

"세계화는 결국 글로벌 경제위기를 불러왔고 정신의 피폐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정신적 빈곤은 이데올로기도 시장도 해결해 줄 수 없으며, 오직 문학만이 이 위기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정치에 참여하지도 않고 시장이 만들어놓은 유행 풍조와 대중적 취향에 굴종하지도 않으면서 문학적 글쓰기를 견지해 나가려면, 작가는 먼저 마음속으로부터 토해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것이 문학 최초의 지향과 소망"이라고 말했다.

화가와 연극연출가로도 이름난 이 전방위 예술가는 요즘 '아름다움의 미래'에 대한 장시(長詩)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는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지만, 나는 20세기 이후 '아름다움은 죽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든 것이 다 예술이라고 불리는 시대,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가오싱젠은 천안문사태를 비판한 자신의 책 '도망'을 금서(禁書)로 지정한 당국에 항의하며 1987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그곳에서 프랑스어로 글을 쓰며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청년기에 겪은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을 악몽으로 기억했다. 작가는 "반체제와 관련한 글을 찾아낸다고 집집마다 수색하던 시절"이라면서 "공포에 시달리며 그때까지 썼던 모든 글을 몰래 불태웠다"고 했다. 그는 "중국은 아직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없고, 작가가 자유롭게 자기 작품을 발표할 수 없는 나라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곳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작가는 망명 이후 한 번도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한국 방문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