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전국중소기업인대회에서 "대기업의 총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대기업 전문경영인들의 실적 위주 경영이 남의 희생을 유발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총수들이 실적 올리기에 치중해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인 듯하다.

재벌 총수들은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덩치를 키우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협력회사의 납품가격을 후려치고 납품업체가 애써 개발한 기술까지 빼앗아 간 일도 적지 않았다. 재벌들이 요즘 분기(分期)에 수조원씩 이익을 남길 정도로 성장한 뒷마당에는 협력업체들의 땀과 눈물이 적셔 있다. 그렇다면 성장의 열매도 그들과 나눠 성장의 틀을 깨지 않고 유지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총수들이 단체로 청와대에 불려가 압박을 받고서야 동반성장협약식을 체결하는 사진이나 찍어 언론에 돌리는 게 우리 총수들의 현실 인식이다.

재벌들이 총수의 이익 극대화(極大化) 전략에 내몰리면서 숨쉬기 힘들어진 곳이 협력업체들만은 아니다. 이 정권 들어 출자를 규제하던 여러 제한조치가 풀리자 재벌들은 서민형 자영업으로 너나없이 영역을 확장했다. 총수의 딸이 제빵사업에 관심을 보이면 베이커리체인점을 만들고, 아들이 커피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외국브랜드와 손잡고 커피체인점을 전개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부자들처럼 세상을 뜨면 재산의 절반을 나라와 국민에게 유익한 사업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총수는 없다. 삼성 회장은 올해 대략 1346억원 배당금을 받았고, 상장회사에서 100억원 이상 배당금을 받은 총수만 13명이다. 이들 중 누구도 불우이웃을 위해 회사돈이 아니라 자기 배당금에서 절반을 떼어 내놓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총수가 황제(皇帝)처럼 만능 권한을 행사하는 한국형 지배구조는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고 위험한 투자에도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리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태광·오리온·효성 등에서 드러난 비리를 보면 오너가 오히려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요소로도 작용하고 있다.

대주주 이익을 위해 납품업체와 소비자, 임직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지금의 구조가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 후 대우조선해양은 총수 없이도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했다. 총수들이 스스로 경영 철학을 바꾸지 않으면 오너 체제의 장점을 부정하는 흐름이 둑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를 휩쓸 수도 있다.

[오늘의 사설]

[사설] 대한민국, 이렇게 2012년을 견딜 수 있을까
[사설] 우리금융·산은금융 합병 前 국민 설득부터
[천자토론] 삼성이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