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연세대 의대 교수

해마다 방학철이면 많은 단체들이 해외로 의료봉사를 간다.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수준이 높아져서 예전에는 가기 힘들었던 아프리카 오지까지 찾아가서 인술(仁術)을 베풀고 온다. 머나먼 곳에 가서 가난하고 병든 환자들을 돌본다는 것은 슈바이처나 테레사 수녀, 또 최근 이태석 신부님의 봉사 모습을 떠올리게 되어 더욱 인기가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1~2주의 단기 해외 의료봉사는 별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돈 낭비가 심하고 때로는 현지에서 일하는 의료인이나 주민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아프리카로 단기 의료봉사를 가려면 규모가 작더라도 의사·간호사·약사·행정요원 및 봉사자를 합하여 10여명 이상이 움직여야 하며, 이들의 왕복 항공요금만 수천만원이 든다. 현지에서 사용할 약품 및 의료장비를 구매하여 운송하는 비용도 수천만원 이상이 든다. 여기에 현지에서 필요한 교통비·숙식비, 통역과 안내를 맡는 현지인 고용비 등을 더하면 1주일 단기 봉사를 위해 억 단위의 돈이 필요하다.

1주간이라고는 하지만 가는 시간, 준비시간, 정리하고 돌아오는 시간을 빼고 주말을 제외하면 진료 시간은 많아야 4~5일이다. 그나마 어떤 팀은 도착해서 진료할 건물을 찾고 준비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무엇보다 진료 내용이 문제이다. 많은 인원과 돈이 투입됐으니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도 가능한 한 많은 환자를 보기 원하고, 여기에다 현지인들의 호기심과 환자가 아니라도 공짜 약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의사 1인이 하루에 100~200명 이상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 진료의 질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의료 장비라고 해야 청진기와 혈압계 정도이고, 많은 경우 혈액검사나 엑스선 같은 기초적인 진단장비조차 없다. 단 한 번 5분 이내의 진찰로 병명(病名)을 진단하고 가지고 간 약을 나누어주는 것이 진료의 전부이다. 일단 약을 나누어준 이후에는 진단이 맞았는지, 약을 환자가 먹었는지, 다른 사람에게 주었는지, 병이 나았는지 악화되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아프리카의 보건의료 환경은 열악하다. 아직도 매년 800만명의 어린이가 죽어가며 이런 비참한 일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 인력도 부족하고, 의약품도 부족하고, 근본적으로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억대의 비용이 드는 이런 식의 단기 의료봉사로 단 한 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를 살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프리카의 보건의료 문제는 현지의 사회경제적 배경 및 보건의료 시스템을 분석한 다음 장기 계획으로 현지 실정에 맞는 보건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단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주민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질병예방 사업 및 모자보건 사업에 헌신하는 많은 보건요원들이 있으며, 20여개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병원에서 묵묵히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50명의 젊은 한국 국제협력의사들이 있다. 이제는 억 단위 돈을 들여서 비행기 타고 먼 곳까지 날아가 사람 모아서 진료 실적 쌓고 사진 찍어 귀국해 홍보하는 것보다 아프리카에 정말 도움이 되는 장기 의료봉사 모델을 만들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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