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는 30일 후보지 심사를 받았던 경남 밀양부산 가덕도의 평가점수가 각각 기준 평점(100점 만점에 50점)에 미달하는 39.9점, 38.3점이었다면서 두 지역 모두에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정부는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심사위의 평가 결과를 받아들여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을 일단 백지화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에 대해 밀양과 가덕도 주민, 그리고 두 지역을 각각 밀면서 두 조각이 난 영남 정치권은 "대(對)국민 사기극"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이 이렇게 크게 덧난 까닭은 신공항 건립비용은 모두 중앙정부가 대고 공항운영이 적자가 나도 지방자치단체는 빚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지자체와 지역출신 정치인들이 앞장서 밑져야 본전이란 심리로 공항 유치(誘致)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면서 지역 주민을 부추겨 여론을 뒤흔들어 놓은 탓이다. 공항을 유치할 때 해당 지자체가 건설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부담하고 공항 운영의 흑·적자(黑·赤字)에 따라 지자체가 수익과 손실을 나누는 방식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런 후유증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동남권 신공항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공항이 새로 들어서면 엄청난 이익이 따라올 것으로 짐작해 3년 동안 유치에 힘을 쏟았던 해당 지역 주민들로선 속았다는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그런 만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빠른 시일 내에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배경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고 국민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다. 영남권 의원들도 지난번 총선에서 공항 유치 약속을 써먹을 만큼 써먹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함께 공약을 못 지키게 된 것에 대해 주민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할 일이지 유권자 틈에 끼어들어 대통령을 향해 삿대질하며 은근슬쩍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은 국민을 두 번 속이는 짓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해엔 자신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으로, 둘째 해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도시 건설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던 대선 때의 약속을 바꿔 보려다 백해무익(百害無益)한 논쟁으로 나라를 두쪽으로 갈라놨다. 올 들어선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 벨트 입지 재검토 방침으로 지역 간 우격다짐이 계속됐다. 대통령 자신은 물론 나라 전체가 국가 발전에 돌려야 할 막대한 에너지를 낭비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방침에 대해 곧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한다.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차기 대선주자들은 현 정부가 대선공약을 무르게 된 것에 대한 논평(論評)을 내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2012년 대선에서 국민을 속이는 '말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공동선언이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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