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10일 상장회사가 '준법(遵法)지원인'을 의무 채용토록 해 변호사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법안을 슬그머니 통과시키고, 이튿날 여야가 국회 본회의에서 이를 처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될 이 법은 일정 규모의 자산을 가진 상장회사는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할 준법통제기준을 마련하는 업무를 담당할 임기 3년의 상근 준법지원인을 1인 이상 두도록 하고, 변호사, 5년 이상 경력의 법학 교수, 이 밖에 법률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준법지원인을 맡도록 했다. 현직 교수가 3년 임기의 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대학을 떠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므로 사실상 변호사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변호사 1만명 시대에 동료 변호사들의 취업난 해결을 위해 총대를 멘 것이다. 자산 1000억원 이상 상장회사는 846곳이어서 이 법이 시행되면 대략 1000명 가까운 변호사들에게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는 준법지원인 도입으로 기업의 법적 분쟁이 줄어 기업 경쟁력과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는 법사위의 주장에 대해 '황당한 이야기'라고 했다. 웬만한 기업들이 이미 법무부서나 윤리경영부서 같은 조직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추가로 준법지원인을 두라는 것은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외부 감사 외에 사외이사까지 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계가 또 다른 중복규제로 기업의 등을 쳐 동업자들의 취직자리를 만드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법사위의 변호사 출신 의원들은 지금껏 다른 전문 직업인들이 변호사 영역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여야 없이 일사불란한 행동통일을 해왔다. 법사위는 준법지원인제를 챙긴 바로 다음 날 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의 수입을 세무사에게 검증받도록 하는 세무검증제도를 보류시켰다. 특허 관련 소송에서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소송 대리인이 될 수 있도록 한 변리사법 개정안과 법무사들에게 소액 민사사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은 법사위의 변호사 출신 의원들의 집단행동에 막혀 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

법사위 국회의원 16명 중 7명이 변호사 출신이고, 준법지원인 제도를 슬쩍 집어넣은 소위원회는 9명 중 6명이 변호사 출신이다.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이기적 집단행동을 계속한다면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법사위원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준법지원인 관련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문제 조항들을 걸러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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