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쓰나미와 비교할 수 있는 재앙은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뿐이다." 서구 당대 지식인 중에서 '일본에 관한 한 최고의 혜안(慧眼)을 가진 사나이'로 통하는 빌 에모트(Emmott)에게 '3·11 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을 예측해달라고 물었다. 이코노미스트지(誌) 도쿄 특파원과 편집장을 지낸 에모트는 일본 경기가 극활황을 누리던 시점에 버블 붕괴를 예언하고(1989년) 전 세계가 일본 경제를 조롱할 때 "이제부턴 올라간다"고 했다(2006년). 로마에 잠깐 머물고 있는 그를 전화로 만났다.

저스틴 스토다트 촬영·빌 에모트 제공

―이번 지진은 당장은 끔찍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인가, 일본인의 정신에 항구적인 트라우마를 남길 일인가.

"아직 우리는 최종 피해가 얼마나 될지 모른다. 최종 집계했을 때 사망자가 10만명이라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단순히 파괴의 정도가 엄청나다는 얘기가 아니다. 평범한 초봄 오후 예상치 못한 재앙이 보통사람 수천 명의 목숨을 쓸어갔고, 실종자는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원전 사고가 겹치면서 과거의 어떤 재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재앙이 됐다. 이번 쓰나미는 장기불황·정치적 분열·중국과의 경쟁·북한의 위협 등 최근 20년간 일본을 괴롭힌 굵직한 난제들을 한순간에 하찮아 보이게 했다."

―일본 경제는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나.

"당장의 타격은 그리 중요치 않다. 경제논리로 보면, 자연재해는 경기를 부양하기 때문이다. 재건사업으로 건설 붐이 일어 경제에 활력소가 될 것이다. 그동안 일본이 디플레이션에 시달린 것은 과잉생산 탓이 컸다. 쓰나미가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 정부 재정이 재건사업에 투입되면서 디플레이션이 끝나고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올 위험이 있다. 일시적으로 자원 부족 사태가 올 수 있다. 하필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과 식량 가격이 올라가고 있을 때 쓰나미가 왔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경제의 발목을 잡진 못한다. 미국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왔을 때, 재건사업으로 인한 경기부양 효과가 허리케인 피해를 상쇄했다."

―심리적 영향은?

"우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일본 국민은 단결할 것이다. 패전 직후 그랬던 것처럼 국가적 어젠다가 분명해지고 정치적 분열이 해소돼 정치 개혁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은 일본은 지금보다 더 편협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일본은 갈수록 국제사회에서 발을 뺐다. 가령 한국 젊은이들은 갈수록 해외에 많이 나가는데 일본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 늘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한때는 일본 젊은이도 적극적으로 해외에 나갔다. 일본은 쓰나미 복구에 몰두하느라 더욱 내향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주변국 정세에도 영향이 미친다. 사회적으로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것이다.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국가와 기업에 강한 신뢰감을 가졌다. 1990년대에 그게 깨졌다. 정부가 고베지진을 수습할 때 보인 무능, 계속 불거진 기업 비리….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도쿄전력이 보인 행태도 같은 맥락에서 타격을 추가할 것이다."

―메이지유신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은 외부의 충격에는 민첩하게 대응하지만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변혁을 이룬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번 쓰나미가 가져올 단결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2차대전 패전은 한 세대를 단결시켰다. 쓰나미는 그렇지 않다. 5년 정도 갈 것이다. 일본 사회는 변화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경제가 성숙할수록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도 함께 강해져왔다. 쓰나미 재건사업은 단기적으로 일본 사회를 유연하게 만들겠지만 그 효과가 5년보다 길지는 않을 것이다. 1945년 이후와 같이 국가와 국민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근거가 뭔가.

"재건사업이 끝나도 일본의 난제는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까. 고령화, 중국과의 경쟁, 북한의 위협."

―일본 젊은이들이 달라지는 '충격요법'이 될 거라는 분석도 있다.

"1980년대의 일본 젊은이 대다수는 자신에게 기회가 많고 앞날도 탄탄하다고 느꼈다. 문제는 그 기회가 미국처럼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시스템이 제공하는 기회였다는 점이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노동시장에서 '2등 시민'이라고 느낀다. 안정된 직장이 없고, 취직해도 단기 계약이 많다. 그런 일자리일수록 보수도 박하고 교육 기회도 적다. 개인적으로 약간 더 자유분방해졌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미래와 인생은 불안해졌다. 이런 변화가 일본 젊은이들을 자기방어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쓰나미가 단기적으로는 활력소가 될지 모르지만, 곧 한계가 온다. 당신이 만약 오사카의 젊은이라고 치자. 도호쿠 지방에 건설 붐이 일어난다고 당신 인생이 얼마나 바뀌겠는가."

―한국과 아시아 정세에는 어떤 영향이 있다고 보나.

"한국은 반짝 이익을 볼 것이다. 일본은 지금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그러나 그건 한두 달이면 끝날 효과다. 지금까지 일본은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자기 역할을 해왔다. 일본이 자기 내부에 틀어박히면 한국에 좋을 게 없다. 그에 비해 한국 경제가 쓰나미로 누릴 이득은 그야말로 대단찮은 수준이다."

☞빌 에모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철학·경제학을 공부했다. 1980~2006년 이코노미스트지(誌)에서 도쿄 특파원, 경제 담당 에디터, 편집국장을 지냈다. 국장 재임 기간 중 이코노미스트 판매 부수를 50만부에서 110만부로 끌어올렸다. 버블 붕괴를 예언한 '태양은 다시 진다'(1989년), 일본 경기가 부활했다고 진단한 '일본부활'(2006년) 등 세계적인 일본 관련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썼다. 중국·일본·인도·한국의 미래를 내다본 '2020 세계경제의 라이벌'(2008년)도 있다.

[찬반토론] 일본 경제는 재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