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은 러시아 외무차관의 11~14일 방북 결과를 전하면서 "러시아는 북남관계 개선을 돕는 측면에서 러시아·북·남을 연결하는 가스관·철도·송전선 건설 등이 전망성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조선은 러시아의 계획을 지지하고 그 실현을 위한 3자(남·북·러) 실무협상 제안이 나오면 긍정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을 거쳐 공급받는 사업은 역대 정권이 1990년대 초 이래 20년 넘게 추진해 왔던 사업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정상회담에서 이 사업에 대한 합의를 발표했지만 그때마다 북한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랬던 북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러시아 가스 연결사업을 긍정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북한 나름의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북은 지난달 남북 군사실무 예비회담에서 의제(議題)를 적당히 덮어 놓고 본회담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다 우리측이 "천안함 폭침(爆沈)과 연평도 포격(砲擊)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와 도발 방지 확약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자 "천안함은 한·미 모략극"이라며 회담장을 뛰쳐나갔다. 그 후로도 북은 천안함·연평도 의제를 피해 가며 남과 대화할 묘방(妙方)을 계속 찾고 있는 듯하다.

북은 얼마 전엔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에 대한 남북 공동연구를 제안해 왔다. 일본 대지진 이후 높아진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남북 대화의 문을 여는 지렛대 구실을 해주리라고 기대한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 회장 시절부터 러시아 가스관 연결사업에 열의를 가져 왔다. 북한측이 이번에 가스관 연결 문제를 들고 나온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에도 헛짚었다.

북한이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 2함대 소속 초계함을 어뢰 공격으로 폭침시켜 46명의 해군 장병을 죽인 천안함 폭침사건이 닷새 후 1년을 맞는다. 생존 병사들은 지금도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힘들다"고 한다. 어느 정부 어느 국민이 자국(自國) 군함을 불법적 기습적으로 공격하고, 대낮에 민간인 마을을 향해 포격을 가해 놓고 그걸 인정(認定)도 사과도 않는 상대와 대화하려 하겠으며, 그런 대화를 한다고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 북한도 이제는 사정을 알 만한데 계속 엉뚱한 곳에서 약(藥)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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