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덮친 대참사(大慘事)에 세계가 숨을 죽이고 있다. 우리 국민도 일본 동해안 도시들이 통째로 사라지고 수만명이 실종된 참극(慘劇)을 보며 말을 잃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일본 국민을 부축하고 위로하자는 움직임이 폭넓게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난을 겪는 일본 국민을 감싸 안는 첫걸음은 무엇보다 일본의 현 상황을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언론부터 3·11 일본 대지진을 보도하면서 써야 할 말, 쓰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야 한다. 한 미디어가 '일본 침몰'이라는 제목을 달자 일본 네티즌들은 "일본 침몰이 기쁜가?"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상대의 반응이 어떻다 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살폈어야 할 대목이다.

일본에 닥친 재앙과 일본 국민이 당한 현재의 사태를 우리 경제의 손익(損益) 차원에서 다루는 듯한 표현도 삼가는 게 옳다. 윤리적 판단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대지진이 터진 날 밤엔 어느 방송이 특집 메인뉴스에서 "지진 때문에 한류 스타들의 일본 공연과 출연 일정을 조정할 수밖에 없어 신한류 열풍이 위축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일본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시청자들도 그 보도에 어이없어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본의 재난을 언급하면서도 삼가야 할 말이 있다. 일부 철부지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은 일본 국민에게 상처를 준다는 차원에 앞서 우리 국민의 품격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이런 글은 다른 네티즌들의 호된 비난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는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지난 12일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원로급 목사 한 분이 기독교 인터넷신문 인터뷰에서 "일본 국민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진으로) 경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평생 남의 아픔과 어려움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며 살아온 목회자(牧會者)의 말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 국민 대부분은 이웃 일본이 겪고 있는 고통을 내 일처럼 느끼고 아파하고 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같은 반일(反日)-항일(抗日) 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19년 동안 해 오던 시위를 이번 주엔 멈추기로 했고 "일본이 국가적 재앙을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와 귀국 사할린 동포들도 적은 돈이나마 쪼개 모금을 시작했다.

일본 국민은 당장 먹을 것, 마실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생지옥 같은 처지에서도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질서정연한 시민의식을 보여 줘 지진에 놀랐던 세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만들고 있다. 우리 모두 이런 일본 국민의 등을 감싸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우는 말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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