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발 나누기 캠페인’ 참가자들은 머리카락을 자르기 전·후의 사진과 함께 기증을 하게된 사연을 보낸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소아암 치료를 받고 있는 이모(11)양은 머리카락이 없다. 작년 9월 소아암이 발병,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해 할 수 없이 머리를 밀었다. 싹싹하고 활발해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이양이지만 그 뒤로는 병문안을 온 친구들과 만나지 않으려 했다. 친구들도 머리카락이 없는 이양을 낯설어했다. 이양 어머니는 "머리를 민 뒤로는 밖에 나갈 때 꼭 마스크와 모자를 쓴다"며 "TV에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암환자들이 나오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죽는 거냐'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소아암이란 급성백혈병, 악성림프종, 골육종 같이 어린이들에게 많이 생기는 암(악성종양)이다.

이양과 같은 어린 암환자들은 항암 치료에 따르는 탈모 증상으로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기 쉽다.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가발 가격이 수십~수백만원에 달해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부모들로선 선뜻 사주기 힘들다. 소아암 병동의 익숙한 풍경이다.

이 어린이들을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봉사단체인 날개달기운동본부(이하 날개본부)에서 작년 1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사랑의 모발 나누기 캠페인'에 참가한 1200여명이다.

기부에 동참하게 된 사연과 머리카락을 자르기 이전과 이후 사진이 쌓이고 있다. 이렇게 모인 머리카락들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만 18세 이하 소아암 환자들의 가발이 된다.

서울 일원동 서울 삼성의료원 소아암 병동에서 투병 중인 아이들이 아픔을 잊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경남 창원에 사는 간호학과 대학생 김다솔(21)씨는 지난달 16일 머리카락을 잘라 날개달기운동본부에 보냈다. 김씨는 "내가 네살 때 여중생이던 사촌 언니가 수술 때문에 머리카락을 밀었는데 병문안 갔다 언니가 무서워 엄마 뒤에 숨어버렸다"며 "그때 언니가 속이 상해 눈물을 펑펑 쏟던 기억이 나 머리카락을 기부하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몇달 전 인터넷에서 날개본부 캠페인을 본 후 머리카락을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증이 가능한 길이인 25㎝를 넘긴 지난 1월 말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작년 12월에는 날개본부에 아주 특별한 머리카락이 기증됐다. 경기도 양주에 사는 권미선(27)씨가 "내가 항암치료를 받기 전 잘라 보관하고 있던 머리카락"이라며 "누구보다 그 고통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이렇게 보낸다"는 사연을 전했다. 권씨는 작년 6월 림프암 판정을 받고 5개월간 항암 치료를 마치고 회복 중이다.

부산에 사는 천소윤(18)양은 "예전 할아버지께서 큰 수술을 하셨는데 친구들이 헌혈 증서를 50장이나 모아줬다"며 "집안 형편이 안 좋아 친구들 마음에 보답할 게 없었는데, 이번에 머리카락도 기부를 받는다고 해서 망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 제대 후 2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을 기부한 심우찬(28)씨는 "3월에 개강도 있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해서 짧게 잘랐다"며 "그동안 길러왔던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게 아깝긴 하지만 좋은 일에 쓰이니 뿌듯하다"고 했다.

이렇게 모인 머리카락들은 가발 전문업체 하이모로 보내진다. 하이모는 2000년부터 사회 공헌사업의 하나로 소아암과 백혈병 환자들에게 가발을 기부하고 있다. 하이모측은 "날개달기운동본부뿐 아니라 긴급헌혈봉사단,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등 4개 단체에서 머리카락을 모아 보내주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5년간 3181명이 머리카락을 기부했고, 837명의 어린 암환자들이 무료 가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