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2의 국민 성금 모금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가칭 '한국의료지원재단'이라는 의료구제 모금기관이 지난달 보건복지부에 법인 설립 허가 신청을 냈다. 재단은 3월 중 설립 등기를 하고 모금 목표와 프로그램, 배분 절차 등 세부 규정을 만드는 준비과정을 거쳐 4월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관(官) 주도의 성금 모금기관이 또 하나 생겨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복수 경쟁체제로 바뀌는 것이다.

정부는 모금 기관이 경쟁 체제가 되면 기부문화 확산에 도움이 되고 전체 모금 액수도 커질 것이며, 기부자는 원하는 곳을 골라 기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모금한 돈 3395억원 중 65%를 기업이 낸 것이 한국 기부문화의 현실이다. 재벌 회장들이 회사 돈을 자기 이름으로 내는 성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모금 기관이 하나 더 생기면 기업의 부담만 키울 우려가 크다. 정부는 재벌 그룹과 금융권에 이익 잉여금을 내도록 해 저소득층에게 저리(低利)로 소액을 대출해주는 총 2조원 규모의 미소금융재단을 운영토록 하고 있다.

13년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설립한 명분은 과거 복지 정책 담당 부처들이 성금을 장·차관 경조사비 등 사실상 '주머니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부작용을 도려내기 위한 '정부로부터 독립'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수천억원의 성금이 복지부의 별도의 예산처럼 운용돼 왔다.

세계 제3의 부호인 워런 버핏은 2006년 370억달러를 세계 제2의 부호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세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면서, "게이츠 재단이 자선사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성금을 모으는 것과 분배하는 것 모두 선진국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모으는 것은 기업에 매달리고 있으며, 쓰는 것은 복지부의 별도 예산처럼 집행된다.

큰돈의 기부도 중요하나 기부정신을 북돋워 중산층의 십시일반(十匙一飯)이 기부의 기둥이 될 수 있도록 기부를 생활의 당연한 일부로 받아들이는 기부문화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모금기관들이 수입·지출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해 신뢰를 높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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