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최근 군(軍)이 대북 심리전 내용을 정치권에 알려주고, 이런 내용이 일반에 공개된 데 대해 군 당국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앞으로 군(軍)이 반(半)공개적으로 전단과 구호물자를 북으로 날려 보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작년 11월 북한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300만장의 전단을 북에 날려 보낸 사실은 군이 얼마 전 미래희망연대 송영선 의원에게 제출한 '대북 심리전 현황'자료를 통해 일반에 공개됐다. 군은 전단과 더불어 햇반 같은 물품을 같이 보내면서 '대한민국 국군입니다. 먹어도 안전합니다'라는 문구를 써넣었다고 한다. 군은 조만간 이집트리비아의 민주화 시위 내용을 소개하며 "세습정권, 독재정권은 망한다"는 내용을 담은 전단을 새로 제작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심리전은 상대국가 병사 또는 주민의 마음을 다독여 그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혹은 탄압하는 정권의 진짜 모습을 알려줌으로써 전의(戰意)를 떨어뜨려 이쪽의 승리를 돕는 수단이다.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대국 병사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이쪽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국 내부의 이반(離反)세력의 이름을 빌리는 것은 심리전의 초보 상식이다. 세계 대부분 군대는 심리전 전담 조직을 따로 두고 심리전을 수행하지만 우리 군처럼 이런 사실을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 이번 경우처럼 대한민국 국군이 전면에 나서게 되면 심리전의 대상인 인민군 병사와 이북주민들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갖게 돼 목표 달성이 그만큼 어려워진다.

미국 정치학의 행태주의 이론을 개척한 해럴드 라스웰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의 선전영화를 분석해 대독(對獨) 심리전을 도왔다. '국화와 칼'이라는 일본인론(論)으로 유명한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니딕트도 전쟁수행과 전후 점령정책의 지침을 얻으려는 국무부 요청에 따라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연구했다. 그런가 하면 T.S. 엘리엇과 함께 미국 시단(詩壇)을 대표하던 에즈라 파운드는 전체주의가 인류를 구원할 등불이라는 오판(誤判) 탓에 이탈리아 라디오 방송에 등장해 수백 차례에 걸쳐 미국과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처럼 심리전은 상대국의 전력을 약화시키려는 노골적 전쟁수단이지만 그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상대방 문화와 심리에 정통한 고도의 전문가들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적인 동시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함께 얘기해야 하는 대화 상대이기도 하다. 이런 상대에 대한 심리전은 더욱 치밀한 분석을 토대로 해야 한다. 세계 정세는 물론 한반도 내부 상황조차 어두운 북 주민들에게 조악(粗惡)한 방식의 심리전을 펴다간 오히려 반감만 부를 수도 있다. 대북 심리전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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