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에서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양화대교가 교통사고를 부르는 '곡예(曲藝)다리'로 변신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1시 양화대교 공사현장. 합정동 쪽에서 250여m 지난 다리 중간 부분부터 270여m가 'ㄷ'자 형태로 구부러져 있다. 서울시에서 다리의 교각을 고치기 위해 작년 6월 임시 다리를 설치하면서 이렇게 기형적인 모습이 된 것이다.

임시 다리 위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는 두께 약 7㎝로 곳곳에 금이 가고, 균열이 심했다. 다리 가운데엔 폭 20㎝의 균열이 10m 길이로 움푹 패어 지나가는 차마다 덜컹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반창고를 붙인 것처럼 가로 5m, 세로 5m가 넘는 '대형 땜질' 자국도 눈에 띄었다. 도로 주변에는 주먹만한 아스팔트 조각들도 어지러이 굴러다니며 운전자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처럼 임시 다리가 위태롭게 방치된 것은 서울시와 시의회가 옥신각신하면서 공사가 중단·재개를 반복하면서 생긴 결과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 임시 다리를 철거하고 나머지 공사에 들어가야 했지만, 서울시와 시의회가 대립하면서 두 차례 공사가 중단됐다.

서울시가 양화대교 공사에 들어간 것은 작년 2월. 한강 서해뱃길 사업을 위해 5000t급 유람선이 다닐 수 있도록 양화대교 교각 폭을 3배가량 넓히는 공사였다. 다리의 상판(上板)을 제거하고 임시로 'ㄷ'자 모양 다리를 세운 뒤 공사를 하다가, 작년 6·2 지방선거 이후 공사를 중단했다. 시의회 주도권이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6월 22일 "서해뱃길은 대운하 사업"이라며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에서는 시의회를 상대로 "시민 안전에 문제가 많다"며 설득, 84일 만인 작년 9월 14일 공사를 재개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또다시 작년 말 새해 예산을 짜면서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서해뱃길 사업을 할 필요가 없다"며 양화대교 공사 예산 182억원을 삭감해 올 1월 공사가 다시 중단됐다. 이 공사에 들어간 돈은 263억원이다.

서울 양화대교는 서울시·시의회 간 갈등으로 1년째 기형적인 모양을 유지한 채 곡예길 교통사고와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임시 다리를 지나는 차들은 갑자기 길이 구부러져 살얼음 운행을 해야 하고, 서울 지리에 밝지 않은 운전자들은 급정거로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나기 일쑤다. 택시기사 고원길(58)씨는 "이렇게 꺾어지는 다리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이 다리는 소송감이에요. 소송감!"이라며 흥분했다.

고씨는 지난해 6월 27일 새벽 4시쯤 택시 1대가 완전히 쭈그러져 승객 2명이 사망한 사건을 목격했다. BMW SUV 차량 운전자가 다리 중간이 'ㄷ'자 형태로 구부러진 것을 모르고 달리다가 중앙선을 넘어 택시를 깔아뭉갠 사건이었다. 지난달 7일 밤 11시 30분쯤에는 광역버스 1대가 구부러진 부분을 모르고 직진,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미끄러지면서 수백 대 차량이 2시간 동안이나 다리 위에 갇히기도 했다. 고씨는 "시와 시의회 싸움이 시민을 위험에 내몰고 있다"고 분개했다.

이대홍(31·대치동)씨는 "양화대교를 건너는데, 갑자기 길이 구부러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중앙선을 넘을 뻔했다"며 "의회와 시의 싸움으로 시민만 골병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혀를 찼다.

결국 서울시는 "예비비를 동원해서라도 공사를 마무리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17일 공사를 재개했다. 2차 중단 47일 만이다. 지금 공사를 서둘러도 당초 예정보다 6개월 늦은 내년 6월에야 공사가 끝나게 된다.

시의회 민주당 쪽에서는 "유람선 운행하겠다고 양화대교 공사를 시작한 것 자체가 문제"라며 "대형 유람선이 한강을 다니다가 서강대교와 마포대교 같은 곳에서 충돌하면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의회는 시민의 불안을 감안, 일단 "ㄷ자로 구부러진 다리를 일자형으로 되돌리도록 예산 85억원은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럴 경우, 다리 한쪽만 아치가 생기는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남는다"며 "예비비를 써서라도 공사를 온전하게 끝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현재 양화대교는 'ㄷ'자 구간 안전을 위해 제한 속도를 종전 시속 60㎞에서 30㎞로 낮췄다. 하지만 한밤중에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달리는 차들이 많아 운전자들은 목숨을 내놓고 운전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