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산업부 차장대우

지난달 서울 서부면허시험장에서 경험한 작은 충격은 그 후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잣대로 내 머릿속에 들어앉았다.

일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는 동안 두 번 운전면허증을 갱신한 경험이 있다. 지루하고 의미 없는 강의를 포함해 두 번 모두 반나절이 걸렸다. 접수 장소, 강의 장소, 발급 장소도 모두 달라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녔다.

한국은 접수창구 풍경부터 생소했다. 직원 4명이 전부였다. 일본에선 창구 직원 뒤로 제복을 입은 몇 겹의 간부들이 앉아 있었다. 한국에선 4명이 신청을 받고 면허증을 만들고 발급까지 했다. 일본에선 면허증을 만드는 곳과 발급하는 곳에 창구 직원이 따로 있었고, 그보다 많은 간부가 신청서를 검토했다. 그들의 검토를 기다리기 위해 샐러리맨들은 하루 휴가를 냈고,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았다.

서울 면허시험장에서 탄성까지 지를 줄은 몰랐다. 운전면허증을 만드는 동안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얼마나 걸려요?" 창구 직원의 대답은 "앞에 앉아 계세요"였다. 정확히 3분 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청서와 함께 제출한 출입국증명서 위에 사진이 들어간 멋진 운전면허증이 놓여 있었다.

"와" 하는 소리를 지른 것은 운전면허증을 집어들었을 때였다. 따뜻했다. 기계에서 갓 뽑은 면허증을 곧바로 발급한 것이다. 온기가 남아있는 빵을 집어든 느낌이었다. 회사 선배에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니, "여전히 초를 치는구먼"이라며 웃었다. 과장해서 기사를 쓴다는 신문사 은어다. 추위에 눈물이 돌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손끝에 와 닿은 면허증의 온기는 분명히 나를 황홀할 정도로 감동시켰다.

직원 4명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3분 동안 그들의 몸놀림을 보면서 '일당백(一當百)'이란 저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느꼈다. 일본 면허시험장의 직원을 정확히 세보진 않았지만 실제로 일당백에 가까울지 모른다. 게다가 친절했다. 형식적이지만, "감사합니다"란 인사까지 받았다.

서울 면허시험장의 신청서 발급 창구에서 사람들은 줄을 안 섰다. 버스 정류장도 그랬다. 모이면 줄부터 서는 일본인의 유전자가 한국인에게는 부족한 듯했다. 하지만 서울 면허시험장은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행정서비스로 줄을 설 필요성을 확 줄였다. 도착 시각을 생중계하는 버스 정류장은 승객이 줄 서는 대신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국격(國格)'까지 거론될 정도로 비판받는 한국인의 유전적 결함을 시스템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이런 시스템에 익숙한 듯했다. 사소한 감동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무감각은 빠른 행정서비스가 당연히 누려야 할 한국의 문화가 됐다는 것을 뜻한다. 선진국으로 가는 한국적 방식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아직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 결함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업과 행정 서비스에 비해 정치 서비스는 한 발도 전진하지 못했다. 국민 세금을 밀실에서 나눠 먹고 재정난 운운하는 행태도 달라진 것이 없다. 따뜻한 면허증을 교부할 수 있는 것은 행정의 낭비요소를 차갑게 잘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과 행정, 그것도 말단으로 갈수록 더 아픈 과정을 거치고 더 크게 변한 것은 너무나 불공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