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학 한국 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

지난 30여년을 오직 시나리오와 TV 드라마를 집필하며 살아온 필자에게 최고은양의 죽음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첫 번째 느낀 것은 그녀에 대한 연민이었고 이건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모든 매스컴에서 쏟아내는 충격적인 기사만큼 나 자신에게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왜냐하면 신문에 나지 않았을 뿐 이미 과거에도 삶과 가난에 지쳐 목숨을 버린 작가들이 몇명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누가 죽어야만 비로소 요란하게 허둥대며 반응하기 시작한다.

지난 10일만 해도 정부에서 마련한 2011년 컨텐츠 정책업무 보고 발표장에서 새로 취임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그녀에 대한 애도와 가난한 영화인들에 대한 대비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당장 오후엔 담당 직원들이 영화진흥위원회 직원들과 긴급 회동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최양의 죽음을 두고 매스컴과 독자들이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해 지나친 연민과 동정을 갖는 것을 사양하고 싶다. 정확하게 표현해서 최고은양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거나 오히려 감독 지망생이라는 표현이 옳다. 지망생이란 아직 프로가 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어떤 분야든 수습생의 삶은 힘들고 팍팍하다. 심각한 청년실업시대에 괴롭고 힘든 사람이 어떻게 최양뿐이었겠나. 그리고 어떤 분야에든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프로작가 중엔 TV 드라마 작가를 겸하며 고수익을 올리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우리 협회에서 운영하는 영상작가교육원은 이로 인해 난리가 났다. '굶어 죽기 딱 좋은 이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계속 가야 하는가. 이제 장가가긴 다 틀렸다. 이토록 비참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누가 딸을 주겠나…' 등등. 물론 시나리오 작가나 TV 드라마 작가의 길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수십만, 수백만 관객과 시청자들을 감동시켜야 하는 삶이 어찌 쉽겠나. 하지만 이쪽에서도 열심히만 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 정부에서 가난한 영화인들을 위해 여러 가지 안전망을 마련해주길 절실히 바란다. 하지만 매스컴의 지나친 연민과 동정은 작가 지망생들을 좌절시키고 낙담케 한다는 사실도 알았으면 한다. 다시 한 번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전하고 싶다. '꿈꾸는 인생은 아름답다. 그 꿈을 이루는 인생은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