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에 하트 그린 것 좀 보세요. 온통 초콜릿이에요."

경기 파주시 문산읍 문산우체국 집배장 노완동(45)씨는 11일 아침 7시 30분쯤 도착한 소포를 분주하게 분류하고 있었다. 분류장 한쪽엔 군부대 사서함에 도착한 소포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소포를 쌓은 높이가 1m 80㎝쯤 돼 보였다. 대부분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전국의 '고무신'(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여자친구)들이 보낸 소포들이었다. 택배 내용물 기재란엔 대개 '초콜릿'이나 '과자류'라 적혀 있었다. 우체국 규격상자 사이로 하트 모양의 분홍색 상자와 온갖 그림을 그려넣은 상자가 보였다.

밸런타인데이를 나흘 앞둔 10일 오후 경기 파주시 문산읍 문산우체국에서 한 전방 부대 병사가 군부대 앞으로 온 초콜릿 소포를 가득 안고 활짝 웃고 있다.

노씨는 "소포에도 관상이 있는데 여자친구가 보낸 건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상자 하나를 집어들었다. '××부대 일병 한○○'란 받는 사람 이름 뒤에 하트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상자 빈자리엔 '사랑 보내요', '누가 뭐래도 넌 잘하고 있어!' 같은 격려 문구도 쓰여 있었다.

문산우체국엔 인근 군부대 34곳의 사서함이 있다. 문산우체국장 김태건(50)씨는 "평소 하루 700개쯤 소포가 오고 그중 150개쯤이 군부대로 가는데 밸런타인데이를 며칠 앞두고는 하루 1000~1100개쯤으로 늘어났고 상당수가 군부대로 가는 소포들"이라고 말했다. 군부대 인근 우체국이나 군부대 안 군사우체국들은 해마다 이렇게 밸런타인데이 전쟁을 치른다. 강원도 홍천우체국장 이종열(56)씨는 "연말연시보다 소포가 더 많아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고 했다.

상병·병장보다 이병·일병에게 더 크고 많은 소포가 배달된다. 강원도 인제군 군사우체국장 박재용(51)씨는 "아무래도 갓 입대한 병사의 여자친구가 고참들 몫까지 생각해 초콜릿을 더 많이 보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