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인문대 장학위원회에서 한 교수가 생활비 마련이 힘든 제자들의 딱한 사정을 발표했다.

인문대 4학년 A씨는 1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여서 등록금 전액을 정부에서 지원받지만 생활비는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가 돌아가신 뒤 외할머니 집에서 살던 A씨는 대학 진학 후 기숙사에 살면서 과외와 학원 강사, 호프집과 예식장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했다. 그 사이 외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비를 대기 위해 집을 팔았고 이모가 외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더욱이 2011년부터는 등록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8학기를 넘기게 돼 등록금도 내야 했다.

갓난아이 때 미국에 입양된 인문대생 B씨는 지난해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서울대 인문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B씨는 생활비는 물론 등록금도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미국에 사는 양부모가 금융위기 여파로 운영하던 식당과 집을 날렸고, 어렵게 찾은 친아버지는 청소일을 하며 월소득 50만원으로 근근이 살고 있어 B씨를 돕기 어려웠다.

인문대 교수들은 생활비 걱정 때문에 학업보다 아르바이트에 매달려야 하는 인문대 제자들을 위해 '월급봉투'를 헐기로 했다. 인문대 변창구 학장은 "인문대 제자들의 안타까운 사정이 알려지면서 교수들이 나서기로 했다"며 "교수들에게 전체 이메일을 돌려 몇만원씩이라도 모아보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개성이 강해 "모래알 같다"는 얘기를 듣던 인문대 교수들이었지만, 제자들을 돕기 위해선 너도나도 나섰다. 인문대 교수 175명 가운데 110명(63%)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교수들은 작년 11월부터 매월 급여에서 일정액을 자동이체해 장학금을 쌓고 있다. 매월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을 내고 있다.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평생'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인문대는 최근 개별 인터뷰를 해서 지원대상 학생 5명을 선정했고, 3월부터 매월 40만원씩 생활비를 주기로 했다. 지원대상이 된 A씨는 "예상치 못한 생활비 지원으로 아르바이트 부담이 크게 줄었다"며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님들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