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2009년 3월 이후 중단됐던 대북 식량지원 재개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고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이 3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과거 대북 식량지원에 관여했던 미 외교 소식통을 인용,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식량 지원과 관련해 많은 대화와 논의가 진행 중이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현재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상충된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2일 "미국은 북한의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하고 있지만 현재 어떠한 지원 계획도 없다"고 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도 같은 날 "현재 북한에 어떤 원조를 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대북 식량지원 재개에 관한 논의들이 활발해진 것은 북한이 최근 분배 투명성 문제에 대해 보여준 적극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지난 1일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 "북한 당국이 식량 지원 재개를 요청하면서 분배 감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과거 북한은 분배 감시 문제로 미국과 자주 충돌했다. 2008~2009년 북한에 식량 50만t을 지원하려던 미국이 2009년 3월 약 17만t만 전달한 상황에서 지원을 중단한 것도 분배 감시요원 배치 문제에 대한 견해차 때문이었다.

북한은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에 식량 상황을 추가 조사해줄 것도 요청했다. VOA는 4일 두 기구가 이달 10일부터 약 한 달간 현지합동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두 기구는 작년 9월 북한의 식량상황을 조사했다. FAO 측은 "북한의 초청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같은 후속 현지조사가 이뤄지는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향후 6자회담이나 미북 대화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식량지원 카드를 미리 흔든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식량지원 카드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대화를 끌고 가기 위한 윤활유 역할을 한다"며 "미국이 북핵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고려해 징검다리를 놓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분배 감시를 받겠다는 북한의 태도 변화 이유에 대해서는 "단순한 식량난 때문은 아닌 것 같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매년 식량 수요(약 500만t)에 비해 생산량(약 400만t)이 100만t가량 적은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려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이 가운데 30만~40만t을 한국에서 받아 갔고, 나머지는 미국·중국 등의 지원으로 메웠다. 식량지원을 중단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중국 의존도가 높아졌고 작년에는 군량미 창고(2호 창고)를 일부 열어 춘궁기를 넘겼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 우리가 확보한 정보로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크게 나빠진 건 없다"고 했다. 올해도 북한의 식량난은 계속되겠지만 견디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예년에 비해 크게 힘들어진 것도 아닌데 북한이 자꾸 식량을 구걸하는 이유가 수상하다"며 "군량미 비축 등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강성대국 원년'을 천명한 2012년을 앞두고 과시용 행사와 주민들에게 줄 선심성 선물 등을 준비하기 위해 식량을 비축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