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출제·관리하는 교육과정평가원 김성열<사진> 원장은 5일 본지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줄여나가겠다"며 "이를 위해 수능을 점차 쉽게 출제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밝혔다. 당장 올 11월 치러지는 2012학년도 수능부터 지난해보다 쉽게 느껴지도록 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수능이 쉬워지면 상위권 학생들의 점수 변별력(辨別力)이 떨어지고, 상위권 대학들이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학생 선발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김 원장은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대신 상위권 대학은 대학별고사(면접·논술)와 고교내신, 입학사정관 전형 등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김 원장은 '본고사'란 표현은 한 차례도 쓰지 않았지만, 앞으로 상위권 대학들은 면접·논술 중심의 '본고사형 시험'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쉬운 수능'으로도 중·하위권 대학에서는 수험생을 변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김 원장은 말했다. 결국 ①상위권대학은 '수능(자격시험)+대학별고사' ②중하위권 대학은 '수능'으로 입시구조를 이원화(二元化)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침은 상위권 대학의 입시 제도와 수험생의 입시 전략에 적잖은 변화를 줄 전망이다. 최근 몇년간 대학 입시가 다양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수능 비중이 절대적이며 고3은 수능 점수 따기에 '올인'하는 것이 일반적 패턴이었다.

김 원장은 "입시에서 수능 영향력을 줄이고 각 대학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은 현 정부 공약인 '대입자율화'의 방향이기도 하다"며 "장기적으로 수능은 중상위권 이하 학생들을 변별하는 시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 대학 입시처럼 가겠다는 방침으로도 보인다. 미국 주요 사립대들은 한국의 수능에 해당되는 SAT(대학입학시험)를 지원자격 정도로 활용하며, 추천서·자기소개서·심화수업(AP)이수·면접 등 다양한 지표를 통해 신입생을 뽑는다.

―수능을 쉽게 출제하겠다는 취지는.

"수험생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수능점수만으로 학생을 변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능 이외에도 학생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지표를 대학과 고교가 개발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선발방식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수능이 쉬워지면 상위권 학생 변별이 어려워질 텐데.

"최상위권 학생을 변별하기 위해 수능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수능은 중상위권 이하 학생의 변별력을 가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장기적으로 수능이 더 쉽게 출제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상위권 대학에서 수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서울대 수시모집 지역균형선발전형의 경우, '수능 두 개 영역에서 2등급 이상'(전체 학생 중 11%, 지난해의 경우 7만8000여명)을 최저 학력요건으로 잡고 있다. 이 점수는 서울대 가려는 학생들에게 어려운 조건이 아니다. 서울대는 이 전형에서 수능 점수를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최저 기준을 통과하는 자격 요건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대신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은 자기소개서·추천서·면접 등으로 입학생을 가른다)

김 원장은 "(상위권 대학은) 수능을 그 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최저 학력기준 정도로 활용하고, 수능 외 다양한 전형을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될 경우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최상위권 대학 입시에서 면접·논술 등의 영향력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입시전문가들은 "내신 비중을 높이면 특목고 학생들이 불리하기 때문에 최상위권 대학들은 논술과 면접 비중을 점차 높이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올해 수능에서도 'EBS 70% 연계출제' 방침은 계속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지난해 EBS 연계출제로 혼란을 겪었던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교재 개선 등 후속조치를 곧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작년 수능에선 왜 EBS 연계 체감률이 낮았다고 보나.

"평가원과 수험생 간에 오해한 부분이 있었다. 학생들은 EBS 교재와 유사문항이 수능에 나올 걸로 생각했겠지만, 우리가 생각한 EBS 연계는 EBS 교재의 개념과 지문을 문제출제에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올해도 수험생들은 단순히 EBS 교재를 문제 풀이 중심으로 공부하지 말길 바란다."

―학생들이 혼란을 겪은 데는 EBS 교재에도 원인이 있었다.

"그래서 교재를 대폭 개편한다. 지금은 1인당 교재를 30~40권 봐야 하는데, 교재 숫자를 줄이고 문제풀이가 아니라 기본개념 이해와 원리 설명 위주로 바꿀 예정이다."

예비 고1 학생들이 치르게 되는 2014학년도 수능과 관련, 김 원장은 "과목별 문제유형과 문제 수는 올해 확정해 공개할 방침"이라며 "내년에 해당 학년을 대상으로 모의수능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2014학년도 수능부터 영어듣기 문항을 50%까지 출제한다는 원칙에 따라 영어 시험(40~45문항 예상) 중 듣기문항이 20~22개가 되므로 예비 고1부터는 영어 듣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라고 김 원장은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