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57년 세계 경제를 강타했던 '수에즈 사태'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인가. 이집트 사태가 악화되면서 세계 원유시장이 공포에 빠졌다. 중동과 유럽을 잇는 동맥인 이집트의 수에즈운하가 반(反)정부 시위로 폐쇄되면 유럽으로의 석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0일(현지시각)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는 "수에즈운하 노동자들이 합류하는 무기한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총연장 164㎞, 수심 8m의 수에즈운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이라크 등 중동에서 생산된 원유를 유럽으로 운반하는 주요 수송로다.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1%인 하루 150만배럴이 수에즈운하를 통해 운반된다.
수에즈운하의 원유 수송 비중 자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수에즈운하가 폐쇄돼 육로를 통해 원유를 운반할 경우 열흘에서 2주 정도가 더 걸리고 운송 비용도 크게 증가한다. 이 경우 국제원유 가격의 상승폭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벌써부터 국제 원유가격이 뛰고 있다.
31일(현지시각) 런던 석유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전날보다 1.59달러 오른 배럴당 101.01달러를 기록하며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유 가격도 하루 만에 2.85달러(3.2%) 뛰어오르며 92.19달러로 마감했다.
유럽인들은 50여년 전 수에즈운하의 폐쇄로 혹독한 겨울을 맞은 추억이 있다. 수에즈 사태는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전격 선언한 후 이에 반발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한 사건이다. 이에 맞서 이집트가 수에즈운하를 폐쇄하면서 중동에서 유럽으로 가는 석유공급이 큰 타격을 입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석유배급제가 실시됐고, 주유소와 공장은 가동을 멈췄다. 이번 이집트 사태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이집트 항구 대부분이 작업을 중단했지만 수에즈운하는 군인들의 경계 아래 평소와 다름없이 선박들이 통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수에즈운하가 실제로 폐쇄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지난해 수에즈운하 통행료로 52억달러를 벌어들이고 2만5000명을 고용하는 등 이집트의 기간산업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또 수에즈운하가 실제 폐쇄되더라도 국제 원유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과거보다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수에즈운하가 세계 석유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수에즈 사태' 때는 8.8%에 달했지만 지금은 1%대로 줄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까지 번진 민주화 열기가 중동의 주요 원유 생산국으로 번지는 경우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같은 나라의 정정(政情)이 불안해져 석유 생산에 타격을 입는다면 세계경제가 곧바로 오일쇼크에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