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고등검찰청 검사장(고검장)급 고위 간부 9명 중 6명의 보직을 바꿨다. 고검장은 서열상(序列上) 검찰총장 다음의 직급이다. 검찰총장이 되려면 고검장을 거쳐야 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화·태광그룹 수사를 지휘해온 서울서부지검장이 인사 대상인 고검장급이 아닌데도 돌연 사직(辭職) 의사를 밝힌 것이다.

지금까지 검찰 인사는 새 검찰총장이 임명되면 그 후속 인사를 하고 그로부터 1년쯤 뒤 정기 인사를 하는 게 관행이다. 이런 관행대로 한다면 검찰 인사는 김준규 검찰총장이 2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는 올해 8월에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 인사 관례를 깨가면서 단순히 일부 고검장급 간부들의 자리 이동뿐인 이런 인사를 왜 이렇게 서둘러야 했는지 하는 궁금증 때문에 여러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 검찰은 상처투성이다. 지난해 한명숙 전 총리의 수뢰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수사 능력을 의심받고,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사건으로 도덕성에도 큰 손상을 입었다. 최근 서울서부지검의 한화·태광그룹 수사는 수사 방법을 두고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여당과 재계 일부는 한화·태광 수사에 대해 "먼지 털기식 수사로 기업을 죽이고 경제를 망친다"고 반발했다. 사실 검찰의 수사 방식이 너무 거칠지 않으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의 재벌 수사는 수사 과정에서 조직적인 증거 인멸이나 강력한 변호인단의 법적 방어,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에 부딪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재벌 수사를 지휘하던 책임자가 사의(辭意)를 밝혔으니 당연히 검찰 안팎에서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지휘·관리 능력이 부족한 검찰 간부나 수사 능력이 떨어지고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검사에게는 정기 인사 때 승진과 보직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래야 문책을 하더라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긴급 상황이 빚어진 것도 아닌데 이번 같은 느닷없는 인사를 하니 '재벌기업 수사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느니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차기 검찰총장의 유력 후보로 만들기 위한 경력 관리용 인사'라느니 하는 이상한 뒷말이 따르는 것이다.

검찰총장은 이번에 청와대가 인사를 하려 하자 인사를 할 만한 요인이 없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검찰총장을 도와 검찰을 이끌어갈 고위 간부들 인사에서 검찰총장을 배제해 버린 게 사실이라면 총장의 영(令)이 설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검찰이 수사하다 장관이 있는 과천이나 청와대를 연신 쳐다보는 일이 벌어져도 뭐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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