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40대 남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감(共感)'입니다.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은 '공감'보다는 '분류'에 익숙하거든요. 여성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옷이며 가방, 아이를 화제로 쉽게 소통하는 데 반해 남성들은 학벌, 출신 지역,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 등으로 상대를 분류하기에 급급하죠."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42)씨가 쓴 '대한민국 남자들의 숨은 마흔 찾기'(엘도라도)는 중년 남성 독자를 겨냥한 책으로는 드물게 '공감'을 키워드로 한 에세이집이다. 정씨는 "소외감과 상실감으로 위축된 대한민국 40대 남성들에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국문과 출신인 정씨는 대학 졸업 후 세 곳의 직장을 거친 후 2004년부터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다. 결혼 14년차로, 맞벌이하는 아내 및 두 아이와 함께 경기도 일산의 20평대 전세 아파트에 거주한다.

정덕현씨는“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내 또래 남성들은 아내와 육아와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낀다”면서“그것을 가족들과 소통하는 기회로 여기고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책에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새삼 자신의 나이를 곱씹고, 급작스레 눈물을 자주 흘리게 되는 심리상태에 당혹감을 느끼고, 가장(家長)으로서 부과되는 책무에 비해 형편없는 가정에서의 지위에 허탈해하는 우리 시대 40대 남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남자에게 마흔은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공포영화보다 두려워지는 시기다. 정씨 역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의사로부터 "폐에 뭔가가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들 몰래 울음을 삼켰던 경험을 진솔하게 적었다. "결국 심각한 병은 아닌 걸로 밝혀졌지만 당시엔 '내가 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살았나' 하는 마음이 들었죠. 그 일을 겪고 나자 조물주가 중년부터 자꾸 우리 몸을 아프게 만들어 놓은 것은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자에게 마흔은 그동안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멀리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나이기도 하다. 정씨는 평생 푸념이라곤 몰랐던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들은 어머니의 주무대 위에 갑자기 서게 된 신인 연기자들처럼 어색해했다"라고 썼다. "항상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몇년 전 명절엔 설거지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의 삶을 돌이켜보게 됐어요. 아버지는 늘 '아빠는 괜찮다'라고 말씀하셨죠. 왜 '아빠도'가 아니고 '아빠는'이었을까. 혹 힘겨운 삶 저편에서 실은 괜찮지 않은 삶을 살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정씨는 "40대 남성들은 문화적으로도 소외돼 있다"고 말했다. "서점에 가 보면 20대와 30대, 노년을 위한 책들은 즐비한데 유독 40대 남성들을 위한 책만은 없어요. '남자의 자격'이나 '개그콘서트'같은 프로그램이 중년 남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건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40대 남성들을 위한 해법은? "시도 읽고, 에세이도 읽고, TV 드라마도 보며 공감지대를 넓혀야죠. '여자들이나 보는 걸 왜 보느냐?'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족과의 공감 통로는 막혀버립니다. 더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소통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