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부문의 사진전 〈산수와 낙산〉은 우리가 익히 봐왔던 산수(山水)를 더욱 명징하면서 아름답게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형 화면 속에 눈 내린 설산(雪山)이 펼쳐지는데 그 광경은 낯설기도 하고 살갑기도 하다. 강원도에서도 볼 수 있고 경상도에서도 볼 수 있는 설산의 모습이다. 그러나 산의 거대한 규모를 담아내면서 동시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마저 또렷하게 포착해낸 화면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화면 가까이 다가가 껍질이 벗겨져 나가는 나무와 슬슬 녹기 시작한 눈, 기울어가는 해의 농담(濃淡)을 짚어보노라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거대한 산이 품고 있는 생명체들이 하나하나 숨 쉬듯 다가온다. 세밀한 부분까지 선명하게 포착해 마치 3D 입체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권부문의〈무제 595〉.

작가는 설악과 홍천·평창 등을 돌면서 인상적인 설경(雪景)을 포착해 화면에 담아냈다. 그는 "산수 시리즈를 하면서 전통적인 산수화를 많이 공부했다"며 "사진작품이지만 산수화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료를 보다가 중국 송나라 작가의 산수화와 자신의 사진작품 구도가 같다는 걸 발견해내기도 했다.

작가는 2007년부터 강원도 낙산사 해변의 모습을 담은 '낙산' 시리즈를 국내외 전시를 통해 소개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전작과 신작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눈이 흰 모포처럼 쌓인 바닷가와 바다 위로 흩날리는 눈은 아련함과 함께 시적(詩的) 감흥을 불러온다. 쌓인 눈의 정적과 바다·눈의 다이내믹한 동선(動線)이 대조를 이루면서 생명력 있는 화면을 구성한다. 낙산 시리즈의 전작과 신작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권부문은 1970년대 경북 안동 수몰지구 등 근대화와 개발 열풍 속에서 사라져가는 풍경을 담아냈고, 1980년대부터는 산과 들의 풍경에 관심을 기울였다. 작가는 "풍경은 바람 속의 구름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번 겨울 내내 한파와 눈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작가는 설경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일깨워준다. 전시는 2월 27일까지 열린다.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