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에 말한 '또라이' 우리 사수 오늘도 지X이네. 머리에 든 건 없으면서 잘난 척은 혼자만 해. 죽겠어." 대기업에 근무하는 신입사원 한정현(가명·24)씨. '절친'에게 자신과 도통 안 맞는 직속 상사를 욕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울분에 겨워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로 휘리릭 메시지를 작성하곤 씩씩거리며 발신을 눌렀다. 몇 초 뒤 날아온 문자. "정현씨, 내가 그렇게 미워?" 아뿔싸! 문자를 받은 건 친구가 아니라 험담 대상자인 사수였다.

#2. "팀장님, 인사부 이 과장님 넘 심해요. 업무 연락 수십 번 보내도 답 없더니 조금 전에 메신저로 '전에 시킨 일 왜 감감무소식이지?' 하고 찍 날려보냈어요. 윗사람한테 알랑방귀나 뀌지, 다른 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니까요." 쇼핑업체에 근무하는 정모 대리는 며칠 전 메신저로 자기 부서 팀장에게 옆 팀 과장을 욕하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메신저 창이 여러 개 떠 있어 헷갈리는 바람에 메신저로 말을 걸어온 인사부 이 과장과의 대화창에 험담 내용을 써버렸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자마자 실수란 걸 알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남의 얘기 같지가 않다고? 이메일, 메신저, 문자 메시지 등 디지털시대의 소통 수단에 익숙한 이라면 한 번쯤 해봤거나 당해봤을 상황이다. 열 받게 한 사람의 욕을 친구에게 화풀이하려고 했는데, 그 화풀이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실컷 욕해놓고 수신인 '문패'를 보니 당사자다. 문자엔 'ctrl+z(입력 취소)' 기능도 없지 않은가. 한 번 보고 말 친구 사이라면 그래도 낫다. 상대가 밥줄을 쥐락펴락하는 상사라면? 암담하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하필 왜 욕할 사람한테 보낸 걸까?

제3자도 아닌 왜 당사자에게 곤란한 메시지를 보내게 되는 걸까.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에 대한 공격성이 발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프로이트는 말실수(slip of tongue)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있는 내용을 말해 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문자가 주요 소통 수단이 된 디지털사회에서 이 말실수가 글실수로 나타나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싫어하는 대상을 계속 떠올리면서 문자나 이메일을 쓰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싫어하는 대상을 수신인에 입력하게 된다는 말이다.

대화 전문가인 공문선 커뮤니케이션클리닉 대표는 "그랜저를 사고 싶으면 그랜저만 눈에 보이듯이 욕할 대상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이 머릿속에 각인돼 버린다"며 "문자를 보낼 때 이름이 자동으로 연동되면서 엉뚱하게 그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박진생 원장은 "험담 메시지를 쓸 때 무의식 속에 억압돼 있던 불만이 한꺼번에 표출되면서 실수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말실수보다 치명적인 '글실수'

문제의 심각성은 실수의 형태가 '글'이라는 데 있다. 뱉으면 바로 휘발하는 말과 달리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말실수는 싫든 좋든 그 자리에서 해결되지만 글은 사태를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실수한 이도 당한 이도 더 괴롭다. 김정운 명지대 문화심리학과 교수는 "말실수는 상대가 맥락(context)과 연계해서 이해하기 때문에 오해가 있어도 해결할 가능성이 큰데, 글은 상대가 맥락을 모른 채 받아들이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험담을 담은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낼 때는 꺼진 불 다시 보듯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한다. 공문선 원장은 "욕하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메시지를 쓴 뒤에는 반드시 소리 내 읽어보고 'send'를 누르라"고 충고했다. "소리 내 읽으면 무의식이 의식적인 행동으로 바뀌기 때문에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현 교수는 아예 "실수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남의 욕은 말로 하라"고 조언한다. 최근에는 이메일이나 문자를 지우지 않고 있다가 상대를 해코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잦아 문제의 불씨가 될 수 있는 글은 남기지 않는 게 좋다.

수습은 유머로, 대응은 쿨하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도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 박진생 원장은 상대를 누그러뜨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유머'와 '솔직함'이라고 강조했다. 웃는 낯빛으로 상대에게 찾아가 "제가 미쳤나 봐요." "저 이제 안 보실 거죠?" 하면서 일단 미안한 의사를 전달하고 이실직고해야 한다. 공문선 원장은 "심각한 사안이 아니면 '술이 '웬수'예요"라는 식으로 얼버무려도 된다"고 했다. 다만 '재발 방지'는 반드시 약속해야 한다.

자신을 욕하는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억울해도 일단 반성부터 하자. 하지현 교수는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생각해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태도는 쿨해야 한다. "야, 이런 맛도 없으면 회사 어떻게 다녀?" "김 대리, 나 많이 싫지?" 웃으면서 배포 있게 나가라. 상대가 나를 달리 보며 두 배 미안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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