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그래픽(CG)은 현대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 8월 국내에 개봉해 영화 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의 경우 총 제작비 4800억원 중 CG 비용이 3900억원이었다는 점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CG는 비단 영화뿐 아니라 방송광고(CF),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초 한국이 아시아 최대의 CG 제작 기지가 될 수 있도록 2013년까지 2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CG 산업을 1조1000억원 규모로 키우고 3만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영화 '한반도', '왕의 남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 등 20여 편의 CG 제작을 지휘했던 디지털 아이디어 김욱 이사(42)를 만났다.

―현재 한국 CG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미국 할리우드의 82%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작업자의 실력이나 시스템 자체는 큰 차이가 없어요. 다만 콘텐츠 경쟁력에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요. 하지만 포비든 '킹덤'(2008년 개봉), 서극 감독의 '신작인 용문비각'(2011년 말 개봉 예정) 등 해외 영화에 우리 제작진이 참여하는 등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간 한국 CG 시장의 변화가 궁금합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 CG 제작기술이 없었어요. 일본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했었지요. 86학번인 제 경우 국내에는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 그나마 CAD(컴퓨터 지원설계)를 배울 수 있는 도시공학과를 선택했을 정도였으니까요. 2000년 전후에야 비로소 국내에 CG 업체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10여년 만에 현재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것은 엄청난 발전입니다. 그만큼 잠재력도 크다고 생각해요."

김 이사는 중학교 때 전자회사의 CF에서 CG를 접하고 나서 관련 분야에 진출하고 싶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PC조차도 거의 없었던 시절 국내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한국 CG 2세대로 구분되는 그의 세대 중 일본 유학파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본에서 방송광고 CG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그는 2000년 귀국해 CF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영화 CG로 영역을 넓혔다.

―영화에서 CG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사극이건 로맨틱 코미디건 CG가 안 들어간 영화는 없다고 봐야죠. 과거에는 후반 작업에 투입돼 색 보정 등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지만, 현재는 시나리오 분석부터 제작 모든 과정에 걸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배우나 스태프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CG를 상상하며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 시각화 작업을 통해 빛의 방향, 시선 처리 등 세세한 것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CG팀의 역할입니다."

―대표적으로 어떤 장면에 CG가 사용됩니까?

"영화 모던보이의 경우 거리, 항구 등 시대 구현은 모두 CG로 제작됐습니다. 놈놈놈에서 주인공 세 명이 마지막 결투를 벌이는 장면도 현지에서 배경 촬영을 한 뒤 실제 배우들의 연기는 일산 라페스타 앞에서 진행됐어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중국 오아시스 배경의 신이 있는데 현지에서도 이런 곳을 찾을 수 없어 남해 해안가에 물웅덩이에서 촬영하고 CG로 배경을 만들었지요."

―향후 전망이 궁금합니다.

"CG의 활용 분야는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어요. 현재 한국 영화 CG 비용은 최대 100억원 수준이에요.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굉장히 적은 편이지만,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CG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망은 무척 밝습니다."

―근무 여건이나 급여 수준은 어떻습니까?

"디지털 아이디어의 경우 대졸 신입이 연봉 1800만원 정도에서 시작합니다. 3년차까지는 혼자 한 컷을 소화하기도 버겁기 때문에 일을 통해 능력을 개발하는 단계라고 봐야지요. 이후 3~7년차는 3000만원에서 6000만원까지 능력에 따라 연봉이 책정됩니다.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7시예요. 주 5일 근무를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고 있어요. 창의적인 작업이다 보니 책상 앞에 앉아만 있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련 분야 진출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기본적으로는 미술과 컴퓨터 관련 전공자들이 많아요. 하지만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적인 능력보다는 영화에 대한 이해와 창의적인 상상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순히 기술을 익힌 친구들은 처음에 작업 속도는 빠르지만, 3~5년이 지나면 그 이상의 것을 내놓지 못해요. 공부를 잘한다고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친구들이 경쟁력이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다양한 분야의 지식,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