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시는 은행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태백시가 대주주로 나서 2008년 개장한 '오투리조트'에 보증을 선 부채규모가 146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백시가 걷는 지방세로는 공무원 인건비도 못 댄다. 올해 인건비 예산은 418억원인데, 지방세 수입은 145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니 은행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한 것이다.

우리나라엔 일본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의 파산 제도가 없다. 그래서 개발 사업에 나섰던 지방 공기업이 빚더미에 앉으면 지자체가 대신 갚아줘야 하고,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의 경우엔 중앙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빚(지방채)은 2008년 19조2255억원에서 작년 말 25조5531억원으로 무려 32.9%나 늘었고, 16개 시·도 지방 공기업 부채도 작년 말 42조7000억원으로 전년(32조4000억원)보다 31.8% 급증했다.

재정 파탄으로 골조뿐인 대전 동구청사 예산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어 골조만 드러낸 채 방치된 대전 동구청의 신청사. 공무원 월급조차 주기가 힘들어진 대전 동구청은 재정 파탄의 무서움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재정도 잠시 한눈팔면 정부가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화'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게다가 일본처럼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도 걱정이다.

LG경제연구원이 우리나라의 복지 제도가 일본 등 선진국 수준으로 갖춰진다고 가정하고 추정한 결과, 작년 말 현재 33.8%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0년 54.6%, 2030년이면 103.7%를 기록하게 된다. 또 국가채무액도 2020년 1110조원으로 현재(394조원)보다 2.8배 늘어나게 된다. 국제 투자자들이 신흥국의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어서면 '투자 위험국'으로 보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재정의 위험성 또한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지 비용은 수혜자가 있어 한번 늘어나면 줄어들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는 치매·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봐주기 위해 2008년 일본의 '개호(介護)보험(요양보험)'을 모델로 해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했다. 이 보험의 대상자는 올 10월 현재 32만명으로 2년 전 14만명에 비해 3배 이상 불었다. 당초엔 올해 대상자가 17만명에 그쳐, 재정 부담이 4284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올해 정부지원금은 예상액의 2배가 넘는 9961억원이다.

그래픽=유재일 기자 jae0903@chosun.com

LG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이 올해 8.9%에서 2020년 15.3%, 2030년 26.9%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18.7%)은 물론, OECD 평균(19.8%)을 넘어서게 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만약 일본형의 장기 불황을 한국이 겪게 된다면 국가채무는 더 많이 늘어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가채무비율이 OECD 평균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경기 부양에 재정을 쏟아부은 결과, 급속하게 재정이 나빠졌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OECD 회원국 중 경제 규모 대비 가장 많은 정부 재정을 투입했다. 2008~201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1%에 해당하는 돈을 세금 감면(GDP의 2.8%)과 재정 지출(3.2%)로 경기 부양에 쏟아부은 것. 다른 나라가 GDP의 1~2% 초반대의 감세나 재정 지출을 한 것과 비교하면 배 이상 높다.

4대강 살리기, 보금자리 주택 건설 등 대형 국책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경기가 회복됐지만 정부 재정엔 상당한 짐이 된 셈이다. 나랏빚인 국가채무는 2008년 309조원에서 1년 사이 359조6000억원으로 50조원 넘게 늘었다. 올해 국가채무는 394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정부는 2014년까지 정부채무 비율을 30% 중반에서 유지하고 재정도 균형을 맞출 계획이지만 세계 경제가 다시 침체기로 돌아서 재정 투입을 해야 한다면 우리나라 재정도 일본처럼 빠르게 나빠질 수 있다. 특히 외국의 전문가들은 우리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의 '급증하는 부채'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한 중앙정부 차원의 관리·통제 매뉴얼을 새로 짜지 않으면 "어! 어!" 하는 사이에 한국의 부채 규모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게 될지도 모른다.

고영선 KDI(한국개발연구원) 재정·사회정책부장은 "중장기 재정 소요를 다시 파악해서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출해야 하는지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야 할 때다"고 말했다.

☞국가채무비율

한 국가가 나랏빚을 감당할 수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서 그 나라의 국가채무를 경제규모(국내총생산·GDP)로 나눈 비율이다. 신흥국은 40%, 선진국은 60%가 넘어서면 그 나라 경제규모에 비해 나랏빚이 많다고 본다. 일본은 1999년 이탈리아를 제치고 선진국 중 1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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