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 금지, 주민 여러분은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 발견시 112신고 바랍니다.'

지난 9일 부산 사상구 덕포동의 다세대주택 대문은 녹슨 철사로 둘둘 감긴 채 굳게 닫혀 있었고, 주변에는 빛바랜 전기요금 고지서와 우편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경찰이 노란색 안내문을 써 붙인 이곳은 지난 2월 김길태(33)가 납치·성폭행 한 뒤 목 졸라 살해한 여중생 이모(13)양의 집이다.

김길태 사건 이후 이 일대 재개발지역 32채의 폐가에는 '이 지역은 경찰 특별 순찰구역입니다' '이곳에 출입하는 행위는 범법행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같은 경찰서장의 안내문이 곳곳에 붙었다. 김은 이양을 빈집에서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역시 빈집을 옮겨 다니며 수사망을 피했다. 사건 발생 10개월이 지났지만 동네에는 대낮에도 다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 위축으로 언제 재개발이 이뤄질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인범 김길태가 지난 3월 10일 부산 사상경찰서로 압송될 당시 모습(왼쪽)과 김에게 살해당한 여중생 이양이 살던 부산 사상구 덕포동의 다세대주택 뒷골목(오른쪽). 이양 가족은 인근 아파트로 이사갔고 이양이 살던 동네엔 대낮에도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경찰 순찰이 강화됐지만 동네 주민들은 아직도 불안에 떨고 있다.

사건 이후 이양 가족은 원래 살던 집을 떠나 인근 아파트로 이사했다. 충격으로 가족은 말을 잃었다. '휴' 하며 연거푸 긴 한숨을 내쉬던 이양 아버지 이모(40)씨는 "혼자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죽고 싶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만 들어 술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매일 저녁 소주 1병을 마시고 취한 채 잠든다는 이씨는 아직도 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부산 기장군 철마면에 있는 딸의 납골당에 장례식 이후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전화 인터뷰를 하던 이씨는 "교복 입고 지나가는 여중생을 볼 때마다 딸 생각이 나서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이 보고 싶을 때면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생전의 딸 사진을 한 번씩 쳐다본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씨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두 달간 방황하다 5월부터 다니던 직장(신발공장)에 다시 출근하고 있고, 그의 아내 홍모(38)씨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교회에 다니고 있다. 우울증 증세를 보였던 이양의 오빠(15)는 동생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부부는 "나 이제 괜찮아"라며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아들을 볼 때마다 까맣게 속이 타들어간다.

이씨는 "기억이 안 난다"며 최근 2심 공판 때까지 범행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 김에 대해 "사람도 아닌 XX"라고 했다. 김은 세 차례 정신 상태 감정을 받았다. 이씨는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김길태를 생각하다 보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 웬만하면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그놈이 '측두엽 간질'이란 심신 장애를 갖고 있다는 2차 감정 결과(지난 9월)가 나왔죠. 속에서 분노가 끓어 올라 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김의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15일 부산고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사건 당시 각계각층이 나서 사고 재발 방지에 힘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등 여러 대책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가해자 인권 보호더군요. 그럼 피해자 인권은요? 계속 비슷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지난 5월 김의 덕포동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덕포파출소가 생겼다. 한 명이 근무하던 덕포치안센터가 28명이 근무하는 큰 파출소로 바뀌었다. 김의 집 부근 덕포동 일대도 치안 강화구역으로 설정돼 순찰이 강화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주민 박모(51)씨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일도 그만두고 아이들 학교, 학원을 따라다닌다"며 "무서워서 이사 가는 주민도 많은데 CCTV(폐쇄회로 TV)는커녕 오래된 가로등 교체도 주민들이 구청에 직접 얘기해야 겨우 해주고 있다"고 했다.

사상경찰서에 따르면 김의 집과 사건 현장 부근인 덕포1동을 포함해 덕포2동까지 가동 중인 방범용 CCTV는 7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4대는 기존에 있던 것이고 사건이 발생한 3월 이후 3대가 추가됐지만 주민들은 "어디에 CCTV가 있는지 찾는 것조차 힘들다"고 했다. 오히려 덕포시장 상인연합회가 CCTV 5대를 추가로 설치했다. 부산시청은 지난 10월 부산 재개발지역 140곳에 8억4300여만원을 들여 방범용 CCTV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김길태 사건 현장인 덕포동 일대에는 6대밖에 배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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