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2시 30분쯤 해병대 연평부대 서정우(22·해병 1088기) 병장은 휴가를 가기 위해 대연평도 선착장에 서 있었다. 다음달 22일 전역할 예정인 서 병장은 오후 3시 출발할 배를 타고 마지막 휴가를 떠날 참이었다. 몇 분 뒤인 오후 2시 34분쯤 "꽝"하는 굉음이 계속되며 북한의 포격이 시작됐다. 사이렌이 울렸고 "실제 상황"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서 병장은 망설이지 않고 부대를 향해 뛰었다.

그의 소속인 해병대 연평부대는 이미 포격을 받아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훈련장과 막사, 사격장, 식당 등 가릴 것 없이 부대 시설들이 포탄에 파괴됐고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서 병장은 귀대하다가 포격에 맞아 큰 부상을 입었고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끝내 숨졌다. 그의 후임인 문광욱(20·해병 1124기) 이병도 포격에 맞아 후송 중 사망했다. 중상을 입은 병사 6명 중 2명이 중태여서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부대 관계자는 말했다.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숨진 해병대 연평부대 서정우 병장이 미니홈피에 띄운 사진.(왼쪽) 해맑은 얼굴로‘몸짱’을 자랑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날 오후 9시쯤 서 병장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서 병장은 지난 3일 미니홈페이지에 "3주만 버티다가 13박14일 말년휴가 나가자"는 글을 남겼다. 홈페이지 제목도 "배야 꼭 떠라, 휴가 좀 가자"였다. 서 병장은 하루 전인 22일에 쓴 글에서는 "드디어 이사가 끝났다. 내 군생활에도 말년에 침대를 써보는군. 내일 날씨 안 좋다던데 배 꼭 뜨길 기도한다"고 했다. 이날 서 병장 전사 소식이 전해지자 이 홈페이지는 3시간여 만에 14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방문했고 추모글 5000여 개를 남겼다.

다른 전사자 문 이병 미니 홈페이지에는 친구로 보이는 이혜규씨가 "광욱아 다 친해지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정말 정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하늘에서는 부디 행복해라"는 글을 남겼다. 박효빈씨도 "살면서 영원히 잊지 않을게. 용기 없는 나라에서 방명록이 전부라 많이 미안해"라고 썼다. 송정훈씨는 "야 문광욱, 너 아니잖아 임마. 1학기 때 공부한답시고 우리 학교 찾아오던 놈이 뭐 죽기는, 이 글 보면 연락해라"고 적었다.

이날 두 전사자 홈페이지에는 얼굴도 알지 못하지만 해병대 선·후배 수백 명이 방문해 '영원한 해병'을 기리는 추모의 글을 대거 남겼다.

전북 군산시 수송동 문 이병 집에는 비보를 접한 친척들이 모여 가족을 위로했다. 큰아버지 문영구씨는 "안타깝다. 쾌활하고 좋은 아이였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 문영조씨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 이병은 전기기사인 아버지를 돕기 위해 대학에 가서도 전기과를 선택했을 만큼 효심이 깊었다고 친척들은 전했다.

이날 전사자와 부상자들은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오후 7시 25분쯤에는 해병대 의장대 30여명이 탄 45인승 버스 1대가 들어갔다. 대원들은 모두 군복에 '근조(謹弔)' 리본을 달았다. 오후 8시 25분쯤 중상을 입은 해병대 병사 6명을 태운 헬기 2대가 병원 헬기장에 착륙했고, 대기하던 구급차 5대가 부상병을 병원으로 숨 가쁘게 실어날랐다.

오후 10시 50분쯤 전사한 서 병장의 작은아버지가 병원을 방문해 "사망 발표한 게 오후 8시인데 아직 장례 준비가 안 돼 있다니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불쌍한 사병을 이렇게 대우해도 되는 거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중상을 입었다고 발표된 김성환 하사 여동생은 "목 옆으로 파편이 스쳐 지나가 오빠가 다쳤다고 하더라"고 했다. 경상자 김지용 상병 친척들도 병원을 찾았다. 사촌동생 김모(12)군은 "학원에 있다가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친 형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며 "고모(김 상병 어머니)가 소식 듣고 기절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경상을 입은 구교석 일병의 이모 한윤태씨는 부상자를 실은 헬기가 도착한 직후인 오후 8시 30분쯤 병원 앞에 도착했지만 직계 가족 외에는 병원 출입을 할 수 없어 면회소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한씨는 "교석이가 오늘 오후 3시 배 타고 휴가를 나오기로 돼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오후 5시 30분쯤에는 부상자 명단에 없는 박종현 상병 부모가 병원을 찾기도 했다. 아버지 박성규(53)씨는 "아들이 자주포 담당이라 걱정돼서 왔다"고 말했다.

["북한 사람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