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천

왼손투수 이혜천. 살짝 잊혀졌던 그 이름이 중심으로 컴백하고 있습니다.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2년 계약이 끝난 이혜천의 국내 복귀설이 솔솔 나오고 있군요. 일본에서 기대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건 물론 아쉽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빨리 결단을 내리는 것도 방법이겠죠.

이혜천이 컴백한다면 기자들은 재밌어질 겁니다. 운동장 안팎에서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캐릭터이니까요. 쾌활한 광대와 독 오른 살모사를 수시로 왕복하는 독특한 성격입니다.

두산 시절 팬들이 붙여준 이혜천의 별명은 '혜천 대사'였습니다. 이름이 스님들의 법명을 연상시키는데다 박박 민 머리스타일을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동료들이 부르는 진짜 별명은 따로 있었습니다. 낙동강 이북에서는 해독조차 힘들 '달세'라는 별명입니다.

98년 신인 시절, 당시 매니저였던 두산 김태룡 이사가 "넌 어디서 살아, 전세냐 원룸이냐?"하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이혜천이 "저 달세인데요" 했다지요. 달세란 부산 사투리로 월세를 뜻합니다. 그런데 막상 부산에서도 자주 듣기는 힘든, 이를테면 '하드코어' 사투리에 속합니다. 월(月)에 해당하는 순우리말 '달'과 한자 세(貰)를 비벼내 탄생시킨 국적불명의 단어. 같은 부산 출신인 김 매니저가 워낙 오랜만에 듣는 찐한 사투리에 너무 웃겨 쓰러졌다가 정신을 수습한 뒤 팀내에 다 퍼뜨린 겁니다.

이후 2001년 김태구라는 신인투수가 탄산음료 '7UP'을 가리키며 옆에 있던 김동주에게 "행님, 저 칠업 하나 마시도 됩니꺼?" 하면서 '칠업'이란 새 별명이 뜨기 전까지 '달세'는 두산에서 최고의 엽기 별명으로 군림했지요.

2001년 5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잠실 한화전 직전 이혜천이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당일 경기조가 아닌 투수들은 2,3회쯤 보다가 귀가하기도 하는데 경기전 퇴근은 이례적이라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취방에 유리조각 치우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하더군요. 전날 경기 9회에 타구에 정강이를 맞아 일주일을 못 나오게 됐는데, 그게 분해서 집에 돌아가 대형 액자를 집어던졌다는 겁니다. 상대타자가 직선타구를 칠 수 있게끔 공을 던진 자신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2001년 10월에는 잠실구장 덕아웃에서 제게 깜짝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원래 오른손잡이였는데 사고 때문에 왼손잡이로 변신했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때 사고로 학교를 1년 쉬는 바람에 동기들보다 나이가 한살 많다"며 털어놓은 사연은 놀라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86년 소 여물을 만들기 위해 작두에 짚단을 밀어넣다가 손이 밀려들어가 오른손 약지가 반마디 절단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보여주는데 손톱 바로 윗부분에 반지 낀 것처럼 동그랗게 접합수술 자국이 남아 있었고, 주변 피부는 불에 댄 것처럼 뭉그러져 있었습니다.

재일동포 야구인 장 훈씨가 어릴 시절 후진하는 트럭에 밀려 모닥불에 오른손을 짚는 바람에 각고의 노력을 통해 왼손잡이로 변신했다는 일화와 비슷하죠. 웃기기만 하는 친구인줄 알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숙연해졌습니다.

인간 이혜천은 웃기고 엉뚱한 쾌활남입니다. 반면 선수 이혜천은 독종 중의 독종이지요. 워낙 일찍부터 우리 앞에 나타나 노장인 것 같지만 알고보면 이제 겨우 31세입니다. 앞으로 몇 년은 끄떡 없을 나이지요.

매력으로 똘똘 뭉친 투수 이혜천을 운동장에서 다시 본다면 참 반가울 것 같습니다.야구전문기자 jin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