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83㎝에 몸무게 196㎏인 여자로 사는 일은 암흑이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이정선(37)씨 얼굴에 그간의 설움이 스쳐가는 듯했다. 몸무게 97㎏으로 다시 태어난 이씨는 수십년 만에 뱃살 밑으로 처음 드러난 발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생명까지 위협받는 초고도 비만 환자인데도 사람들은 그를 '괴물'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2008년 8월 이씨 사연이 한 방송을 통해 알려진 뒤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이 '위 우회술'을 해줬다. 소주잔 크기만 하게 자른 위를 소장과 연결해 음식물 섭취와 흡수를 동시에 줄이는 수술이었다.

2008년 7월 당시 196kg이었던 이정선씨.
몸무게 97kg으로 다시 태어난 이정선씨가 활짝 웃고 있다.

수술 후에는 남의 눈을 피해 공동묘지에 가서 운동을 했다. 운동으로 체중은 서서히 줄었지만 살이 처지기 시작했고, 접히는 곳마다 습진과 물집이 생겨 의자에 앉기조차 고통스러웠다. 이런 사정을 안 서울성모병원은 지난 8일 12시간 동안 배 주위 처진 살 7㎏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해줬다. 수술비는 모두 병원이 부담했다.

이씨는 생선 노점을 하던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초등학교 때 덩치가 커서 중학생이라고 오해를 받았던 그는 고등학교 때 이미 몸무게가 100㎏을 넘었다. 조금만 먹어도 질병 수준으로 살이 쪘다. 1992년 고교 졸업 후 4년간 사무실 경리부터 재봉공장 보조 재봉사까지 수백번 면접을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 몸으로 여기는 왜 왔느냐'는 냉랭한 눈빛만 돌아왔다. 1996년부터는 사람을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텔레마케팅(전화영업)으로 보험과 책을 팔았다. 한 달에 100만~120만원을 벌었다.

이씨는 "나를 버리지 않은 엄마를 위해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며 "외모에 신경 쓸 만큼 삶이 녹록지 않았다"고 했다. '성격까지 나쁘면 아무도 상대 안 해준다'는 생각에 활달하게 살려고 노력했고 어느새 '예스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1년 어머니 회갑 선물로 62㎡(19평) 아파트를 사드렸지만 어머니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4년 만에 날려버렸다. 어머니는 종교시설에 들어가고 이씨는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지긋지긋한 살덩어리들을 떼어 버렸다. 이씨는 "다른 사람이 나한테 신경 안 쓰고 무관심한 게 너무 좋다"며 "17년 만에 백화점에 갔는데 이젠 낯선 사람한테 길도 물어볼 수 있고 버스 타도 미안한 생각이 없어졌다"고 기뻐했다.

"75~80㎏ 정도가 최종 목표예요. 자격증도 따고 직장도 얻어 어머니와 살 집을 다시 마련해야죠. 100㎏짜리 족쇄를 벗어던져서 이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