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논설주간

성금이나 기부금을 멋대로 빼 쓰는 사람은 두 번 죄를 짓는다. 기부자의 뜻을 배신하면서 한 번, 그 돈을 자기를 위해서 쓰면서 또 한 번이다. 욕심을 버리는 인간의 행위를 가장 탐욕(貪慾)스럽게 갉아먹는 인간의 모습이 기부금 털어먹기다.

국내 자선단체에는 곱빼기로 죄를 짓는 줄 모르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사랑의 열매'에서는 기부받은 상품권 30매가 사라졌다. '언제 100도를 넘어 펄펄 끓을까' 하며 연말마다 애태웠던 '사랑의 온도탑'에서도 직원들이 돈을 슬쩍 횡령했다.

아이티 이재민을 돕자고 재촉하던 대한적십자사도 성금을 대부분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이자를 불리고 있었다. 현지에 달려갔던 봉사단은 호텔에 머물고 소주를 마시며 성금을 썼다. 먼지, 피투성이로 얼룩진 아이들 얼굴을 보며 1004 전화 버튼을 눌렀던 사람들 눈에는 아무래도 아이티 투어를 즐기러 간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수천억 비자금 얘기가 춤추는 세상에서 몇 백만원, 몇 천만원쯤 허투루 쓰였다고 트집잡기가 민망하다. 그동안 쌓아온 선행(善行) 마일리지로 충분히 덮어줄 수 있는 귀여운 악행(惡行) 정도로 넘어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해명하고 뒷수습하는 과정이 가관이다. 소액 빼먹기나 한 잔 마시는 일이 늘 있었던 관행처럼 말한다. 상세한 설명도 부족하고 무릎 꿇는 모습의 반성이나 사과도 없다. 소소한 횡령은 월급만으로 살기 힘든 직원들을 배려한 내부 자선 활동이란 말인가. 기부자의 눈총 따위는 피하지 않은 채 당당하다.

시카고대학이 명문으로 성장하던 때 존 록펠러가 가장 큰돈을 기부했다. 어느 해 졸업식에 록펠러가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학은 록펠러 찬양가를 작곡했고 합창단을 훈련시켰다. 록펠러는 그 졸업식에 가지 못했으나, 예배당을 비롯한 많은 건물에 그의 이름이 새겨졌다.

기부자 찬양가를 창작한 한국 대학은 아직 없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도리어 몇 해 전 400억원을 쾌척한 고려대에서 봉변을 당했다.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은 반대시위에 밀려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 대학 측이 감사 표시로 한턱 내는 만찬 자리에도 이 회장은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기부받는 쪽이 기부하는 쪽을 거역하고 애먹이는 일이 너무 잦다. 엉뚱한 곳에 기부금을 돌려쓰다가 기부자로부터 소송을 당한 대학도 한둘이 아니다. 자선단체나 대학이나 종교단체나 기부금을 받아 챙긴 다음에는 '우리가 알아서 쓸 테니 관심을 갖지 마라'는 태도를 보인다.

기부금이 들어가면 그 후에 어떻게 쓰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성금 받는 쪽의 선의(善意)만 믿고 흔쾌히 맡기기에는 의혹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사건은 계속 발생한다. 교회나 절을 통해 정치자금을 주고받거나 검은돈을 세탁하는 비리도 적지 않다. 모금 담당자들은 개인 기부가 적다고 한탄할 뿐, 신뢰도를 높일 일은 하지 않는다.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별 넷(★★★★), 클린턴재단-월드비전 ★★★★, 시카고역사박물관 ★, 미국적십자사 A+, 동물학대보호 A+, 홈리스 전국연대 A-, 브루킹스연구소 A-….

미국서는 공익단체에 등급을 매겨 평가하고 감시하는 시민운동이 활발하다. 안심하고 기부금을 낼만한 곳을 추천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인기다. 뭔가 감추는 곳에는 가차없이 F학점을 매기고 직원 월급을 많이 주는 곳, 행사 경비를 낭비하는 곳 명단도 공개한다.

국내 자선단체, 종교단체에도 회계장부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 미국처럼 대표자-임원의 월급과 이력서를 공개하고, 회계사 검증을 거친 수입-지출 내력을 발표하도록 해야 한다. 기부금을 낸 사람에게 그 돈을 어떻게 썼는지 알 권리를 찾아줘야 한다.

몇 해 전 강남의 초대형 교회가 미국의 자선단체 평가기관에서 좋은 등급을 받으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좀체 해명이 안 되는 지출 항목이 회계장부에 너무 많아 서류제출도 못 하고 포기했다. 스스로 깨끗하다고 자부했던 교회가 이런 판에 다른 곳은 더 따질 필요가 없다.

자선단체든, 교회든, 절이든, 기부금을 받는 곳에는 세금 감면 특혜가 따른다. 장부를 활짝 공개하지 않는 곳에는 세금감면 혜택을 주지 않는 법 조문을 만들어야 한다. 성금 받는 손이 맑아 보이면 기부금은 절로 늘어난다.

*미국의 공익단체 평가 사이트

www.charitynavigator.org,
www.charitywatch.org,
www.bbb.org/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