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만난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48)의 연구실은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을 강조했던 영국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1842~1924)의 기념도서관 맞은편에 있었다.

인터뷰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는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에서 시작했다. 이미 국내에 번역돼 화제가 됐던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과 신작의 차이에 대해 장 교수는 "이전 책들이 주로 개발도상국의 시각에서 쓴 각론이었다면 이번 책은 선진국까지 포괄한 총론"이라고 했다. 물론 그가 줄곧 비판해 온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총론적 비판이라는 뜻이다.

장하준 교수는“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경제이론의 정치성과 가치지향성을 보여주면서 나의 가치들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저서는 '자유시장은 없다'는 다소 과격한 선언으로 시작한다. "자유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중 첫 번째다.

장 교수는 앞선 저서들에서 반복적으로 개발독재의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그 때문에 종종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미화하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저서의 일곱 번째 주장은 이와 관련된다.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독일·일본·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조차 급속한 번영이 이뤄지던 때는 정부의 보호주의가 강력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개발방식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아마도 중소 규모의 국가가 개발독재를 했다면 과연 미국이 인권 운운하며 문제 삼았을까요? 지금 중국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개발방식 자체보다 덩치 때문이 아닐까요?"

흥미롭게도 개발독재 옹호론은 국내 좌파와 미국을 같은 입장에 서게 만든다. 국내 좌파는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비판하고, 미국은 중국의 개발독재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라며 웃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장 교수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민족주의자인가 탈민족주의자인가라는 논란에 휩싸인다. 이번 책으로 이런 논란은 어느 정도 정리될 듯하다. 그가 문제를 제기한 '23개의 고정관념'은 우파의 기본적인 경제원리다. 그는 이것들이 "우파의 정치적 주장"일 뿐이라고 '폭로'한다.

장 교수의 이번 저서는 영국 언론에서 먼저 화제가 됐다. 영국 좌파 언론을 대표하는 가디언지(紙)는 사설을 통해 "노동당 정치인들이 장하준 교수에게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영국의 눈으로 한국을 보는가, 한국의 눈으로 영국을 보는가"라고 물었다. "난 한국인이다. 영국의 이론이나 현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지만 나의 눈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 다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기 때문에 국내의 진보학자들과는 조금 다르지 않겠는가?"

장하준 교수는 줄곧 경제를 경제로만 보지 말고 배후에 있는 정치적·윤리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저서가 바로 그런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장 교수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모두가 잘사는 사회"라며 "그런 점에서 나는 중간보다는 조금 왼쪽에 서 있다"고 답했다. 다만 단서가 있다고 했다. "이번 책은 우파적 고정관념을 깨뜨리자는 생각에서 썼기 때문에 조금은 위악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장하준 교수는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의 소유자인가, '뜨거운 가슴, 뜨거운 머리'의 소유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