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딸이 학교에서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고 통학 불편 등을 해소하기 위해 4차례 위장전입을 했다. 뼈아프게 반성한다."

②"아들이 학교폭력 사건 피해자가 돼 전학할 필요가 있었고 원하는 학교 배정을 위해 3차례 위장전입을 했다. 죄송하다."

위의 두 발언은 모두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후보자가 위장전입을 인정하면서 한 말이다. 위장전입의 사유나 해명이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두 후보자의 공직임명 결과는 달랐다. ①발언의 당사자인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는 지난 9월 청문회 직후 위장전입 문제 등으로 낙마(落馬)했지만, ②의 당사자인 노무현 정부 말기의 A장관은 그대로 임명됐다. 현 정부 들어서도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진 B장관, C청장도 모두 살아남았다. 이들 후보자의 '생사(生死)'를 가른 차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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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고위 공직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이후 청문회를 거친 164명의 청문회 과정을 조사한 결과, 11명(6.7%)이 인준 표결에서 부결되거나 대통령의 지명철회 또는 자진사퇴 방식으로 낙마했다. 하지만 '낙마'와 '통과'를 결정적으로 구분 짓는 원칙이나 기준은 명확하지 않았다. 주로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의혹이 종합돼 일부 후보자의 낙마에 '결정타'로 작용했지만, 같은 결격 사유를 안고도 그냥 넘어간 사례가 적지 않았다. 도입 10년을 맞은 우리의 인사청문제도가 공직 적격 여부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보다는 당시의 정치 상황이나 여론 동향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면서, "청문회는 재수 없으면 걸려 넘어지는 '복불복(福不福) 쇼'"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관성 없는 위장전입 낙마

위장전입은 인사청문회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의혹거리다. 거주지를 실제로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 주소만 바꾸는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위장전입을 한 게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범죄다.

위장전입 문제가 청문회에서 처음 등장한 건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장상 국무총리 서리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장 서리의 주소가 아파트 분양 시점과 맞물려 여섯 차례 옮겨진 것과 관련해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장 서리는 청문회에서 "시모(媤母)가 한 일이라 나는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위장전입이란 야당 주장에 무게가 실렸고 결국 국회 인준 표결에서 부결돼 사임했다.

이를 계기로 '위장전입=부동산투기'로 인식되면서 위장전입은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를 쓰러뜨리는 '결정적 한방'으로 작용해왔다. 2008년 박은경 환경부장관 후보자도 1983년 인천의 농지를 증여받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결국 낙마했다. 그러나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대형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주소지를 이전했다는 의혹을 산 D대법관 후보자는 "위장전입은 불법"이라며 스스로 인정했음에도 무사히 청문회를 통과했다. 2008년 E대법관, F중앙선거관리위원, 2009년 G대법관 등도 아파트 분양권이나 농지 매입, 증여 등을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공직에 그대로 임명됐다. 이들 사례 모두 목적이 무엇이건 주민등록법 위반이란 점은 똑같지만 이처럼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자녀 교육 목적'의 위장전입도 청문회 때마다 논란이 됐다. 실제 사는 곳과 다른 지역의 원하는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위장전입의 경우로, 현직인 G·H장관도 청문회 과정에서 자녀 교육 목적의 위장전입을 인정했다.

불법 없었어도 과도한 부동산은 범죄?

2008년 청문회 과정에서 자진사퇴했던 이춘호 여성부장관 후보자는 아파트·주택·오피스텔·점포·공장·대지·전답·임야 등 부동산 40건을 보유해 청문회장에 서기도 전에 자진사퇴한 경우다. 이 후보자 본인은 "남편 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과도한 부동산 보유가 투기 의혹으로 이어지면서 낙마했다. 지난 8월 청문회 직후 낙마한 이재훈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는 부인이 서민 주거지역인 서울 창신동의 뉴타운 개발 예정지인 '쪽방촌'에 투자했다가 발목이 잡혔다.

하지만 2006년 I부총리 후보자는 과거 14억원에 매입한 경기도의 임야가 택지지구로 지정되면서 40억원대로 급증했고, 연고지와 무관한 전국 4군데에 6500여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야당이 "부적격 후보자"로 규정했지만 그대로 임명됐다.

본지 조사 결과, 164명의 인사청문 대상자 중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우가 38건이었는데 실제 부동산 문제가 낙마로 이어진 경우는 7건에 불과했다. 더욱이 낙마 후보자 대부분은 "부동산 취득 과정에 불법은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노후에 전원생활을 위해 농지나 임야를 매입했다",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했다"며 '투자'라고 강조한다. 검찰 등 수사기관의 조사가 이어지기 전에는 불법성이 있는 투기로 판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결국 "그때그때마다 국민정서를 얼마나 거스르느냐가 가장 큰 판단 기준"(민주당 한 의원)이 되고 있다.

2006년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를 끌어내린 '논문표절, 중복게재'도 이후 청문회 도덕검증의 필수 소재가 됐지만 그 기준은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김 전 부총리는 인사청문회는 별 탈 없이 통과했으나, 취임 3일 만에 언론을 통해 "교수 시절 제자의 논문을 표절했고, 동일 논문을 2개 이상의 학술지에 중복 게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는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파문이 확산되면서 결국 취임 13일 만에 사퇴했다.

지난 8월 임명된 J청장은 청문회에서 "과거 석사 논문을 작성하면서 1년 전 석사학위 받은 사람의 논문을 표절했다. 결론 3페이지 중 1페이지가 거의 동일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송구스럽다"며 이를 시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걸로 끝이었고 그는 며칠 뒤 취임식을 가졌다. 논문표절과 관련해서는 교수 사회에서도 "표절은 학자의 양심을 위배한 것으로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과 "어디까지를 표절로 봐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과거 논문을 다 뒤져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마녀사냥'이 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으로 갈려 있는 상태다.

▲12일자 A4면 '같은 의혹에 누군 되고 누군 안되고 20여건' 제하의 기사와 관련, 장상 전 총리 서리측은 "2002년 인사청문회 때 논란이 됐던 위장전입 의혹은 당시 야당의 주장과는 달리 부동산 투기와 상관이 없으며 횟수도 6회가 아니라 3회"라고 알려왔습니다.

[[Snapshot] '비슷한 의혹, 다른 결과', 인사청문회 10년… 공직후보자 조사해보니]